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아버님의 설날

자오나눔 2007. 1. 15. 23:48
  아버님의 머리맡에는 전자회사에 다니는 작은 아들이 사다준 전화기가 놓여있습니다. 설날이 가까워 올수록 자꾸 전화벨 소리에 신경이 쓰입니다. 혹여 전화라도 오면 벨이 채 두 번을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습니다. 내려오기 힘든 줄은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고향에 내려온다고 씩씩하게 말할 자식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마음 때문입니다. 다섯 남매를 두었지만 내려오지 못할 자식걱정이 더 앞서는가 봅니다. 힘없이 내려가지 못한다고 전화를 하는 자식에게 오히려 위로를 해 주시지만 아버님의 마음 한쪽은 무겁기만 합니다.
  조카네 가족이 내려온다기에 동구 밖까지 몇 번씩 마중을 나가봅니다. 유달리 조카를 사랑하셨던 그 마음이 자꾸 눈 마중이라도 나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며칠 밤을 자야 할 방에는 깨끗하게 도배를 해 놨습니다. 이것저것 남자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잔소리를 하는 마음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섬세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음 한쪽에는 작은 아들이 며느릿감이라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며느릿감을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노인정에 나가 자랑을 하기에 바쁩니다. 아버지의 자랑거리는 역시 자식이요, 며느리 자랑입니다.

  아버님의 방에는 신경을 쓴다고 단장을 했지만 작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작은 거울이 한쪽 벽에 걸려있고, 음력이 크게 표시된 커다란 달력이 벽 가운데 걸려있습니다. 색바랜 옛날 사진이 일자로 걸려 있고, 자식들이 받아 왔던 표창장들이 커다란 액자에 표구되어 벽을 단장하고 있습니다. 그것들만 보노라면 아버님의 마음은 언제나 흐뭇합니다. 누군가가 그 상장을 보고 말이라도 건네주면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자랑이지요. 노인정에 마실을 가시며 비닐 봉투에 무언가 주섬주섬 담아 들고 가십니다. 자식이 없는 외로운 친구분께 설 준비하면서 쓰라고 과일과 생선 몇 가지를 담아 가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나눔을 하는 아버님의 뒷모습이 무척 든든하게 보입니다. 아버님의 설날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든든한 모습으로 살아 계시기를 바라는 자식의 마음을 아시고 계시겠지요.

2001년 1월 22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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