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기행] 1. 정동진 가는 길.

자오나눔 2007. 1. 15. 23:49
     부족한 시간을 넉넉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비슷한 시간
   에 있는 일들을 모아서 하는 것이다. 언젠간  꼭 한 번 가보
   고 싶었던 정동진... 마침 속초에서 결혼식이 있고, 전날에는
   여주에서 결식 노인들  식사 봉사가 있었다. 계산은  나오고
   있었다. 봉사를 마치고 길을 달려 정동진에  도착한 후에 일
   출을 보고 속초로 와서 결혼식에 참석하면  되었다. 함께 봉
   사에 참석했던 지인들과 작별을  한 후 영동 고속도로를 달
   린다. 아내와  아들과 나, 이렇게 세명이  모처럼 떠나 보는
   여행이다. 아들도 현장학습 허락을 받았기에 마음이 편하다.
   운전을 하고 있는 아내, 조수석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은 나,  연신 신기한 듯 창밖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아들.

     점점 산은 높고 골은 깊어진다. 차창을  열어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셔 본다.  바람소리에 놀란 단풍잎들은 우수수  비
   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가끔씩 보이는 대형  간판엔 광고 문
   구가 적혀 있다.  어디론가 부지런히 달리는 차량들, 저들도
   분명 목적지는 있으리라.  그 끝에는 문이 기다리고  있을텐
   데... 어차피 우리들의  가는 길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함
   이 아닐까?  문막을 지나니  점점 붉어지는 산이  아름답다.
   뻥 뚫린 고속도로 양쪽엔 침엽수들이 불꽃처럼 하늘을 향해
   폼을 내고 있다. 산을  뚫고 지나는 것처럼, 마치 안개를 헤
   치고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달리고 있었다. 굽이굽이  돌아
   가니 '소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눈에 띄는 표지판... LPG
   충전소가 있다는 표지...  이 길을 달릴 땐  잠시 빠져나가지
   않아도 LPG를 충전하고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이 꿈틀대는 봄  산도 아름답지만, 역시 산은  가을산
   이 아름답다. 그러나 군데군데 산을 훼손해  놓고 아무런 조
   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보일 땐 안타깝다.  멀리 보
   이는 산머리엔 구름이 모자 되어 멋을  부리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농가를 보며 잠시 고향을 생각해  본다. 언제나 여유
   롭게 찾아 가 보려는지... 무척 길게  뚫어진 둔내 터널엔 송
   풍기도 두 개씩 달려 있다. 이승복  기념관이 있다는 안내판
   을 지나니 고랭지 채소를 키우고 있는 횡계를 지나니 저 멀
   리 대관령이 보인다.

     대관령 휴게소에  들려 우동 한  그릇으로 아내와 아들이
   나눠 먹고 난  커피 한잔을 마신다. 밖엔 엄청  바람이 많이
   분다. 춥다. 역시 이렇게  추울 땐 따끈한 국물과 커피가 최
   고다. 주유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두툼한 외투를 들고  뛰어
   가던 아들이 넘어져 울고 있다.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
   렸다가 다시 차를 출발한다. 대관령에서 강릉  시내 쪽을 향
   해 내려간다. 해발 800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바람에  모두
   떨어져 버린 나뭇잎, 추워서 오돌오돌 떨고  있는 앙상한 가
   지들... 뒤돌아 본 대관령 하늘엔  가느다란 초생달이 배웅을
   하고 있었다. 배낭을  매고 내려오는 어느 노인의  발걸음이
   무겁다. 아마 등산을 다녀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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