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나타내는 사람 인(人)자를 풀어 보면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뜻도 있겠지만, 서로 의지하며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라는 깊은 뜻도 포함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자연만물이 주는 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내 스스로 되는 것은 한 개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한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무엇이던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신적인 도움을 받았기에 이루어진 것 같다.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라는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약한 존재는 무언가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요 신의 뜻이기도 하다. 젖먹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의지하며, 사랑을 먹으며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작은 것들도 무엇인가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필요함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말이다. 몸이 불편하거나 연약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자연의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절망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만 하다.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는 것처럼, 약한 자가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누워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집 밖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면 들 것을 이용하거나, 요즘 같으면 침대차를 이용하기도 할 것이다. 아니면 휠체어를 이용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 더 양호한 사람은 지팡이를 의지하여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나도 전신 75%의 화상과 왼쪽 고관절의 골절로 인해 남다르게 긴 투병생활을 했었다. 화상환자의 수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마취제나 진통제를 놓지 않고 불에 익은 피부를 절단해 내는 치료과정은 차라리 삶을 포기하고 싶도록 한다. 고관절의 골절이 골수염이 되며, 악성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끝내 고관절을 절단해야 하는 과정 등, 전신마취 수술을 20번이나 했으니 그 과정을 말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과정을 이기고 나니 휠체어를 타게 된다. 침대에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 낼 중환자 시절에 누가 내게 "지금 소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휠체어라도 타보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었다. 휠체어를 이용해서라도 비장애인들과 어울려보고 싶은 나의 욕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일 휠체어라도 타고 병원 밖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었다. 길가의 야생화도 구경하며 만져보고 싶었고, 왁자지껄한 시장을 구경하며 길가에서 주점부리도 해 보고 싶은 평범하지만 쉽지 않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가? 그렇게 투병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새 휠체어를 마음대로 타고 다니며 내가 이루고자 했던 소박한 꿈들을 이룰 수 있었다.
옛말에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신들이 남겨 놓은 말은 지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 내던 내가 어느날부터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이제는 목발을 짚고 걸어 보고 싶었다. 오른손과 왼쪽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 버리니 목발을 짚기가 쉽지 않았다. 원래 오른쪽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면 멀쩡한 왼쪽으로 목발을 짚어야 균형을 잡기 쉽다고 한다. 그런데 오른손과 왼쪽 다리를 사용할 수 없으니 왼손에 목발을 잡고 체중을 왼쪽으로 실으며 기우뚱거리며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평생 휠체어도 타지 못하고 살아갈 줄 알았는데 휠체어를 벗어나고 힘은 들지만 목발을 사용하여 짧은 거리는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목발을 사용하기까지는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었다. 남들처럼 목발을 양쪽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균형잡기가 힘들었었다. 덕분에 자주 넘어지고 다치기를 반복하다보니 이젠 요령이 생겨서 제법 잘 걸어 다닌다.
목발이 자주 부러졌었다. 한쪽으로 체중을 실어야만 걸을 수 있기에 오른발을 딛은 후 왼쪽에 있는 목발을 딛으려면 왼쪽으로 체중이 옮겨갔다. 그러다 보니 목발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했다. 요즘 질이 좋은 목발이 나왔다고 하기에 사다가 사용해 보니 3일도 못 가서 휘어져 버린다. 나무 목발을 사용해 보아도 길면 한달 정도 사용한다. 목발을 짚고 길을 걷다가 목발이 부러져 길바닥에 뒹구는 건 이제는 예삿일이 되어 버렸다. 마치 아이들이 길을 달려가다가 넘어지는 것처럼, 그리고 금방 일어나는 아이들처럼 나도 얼른 일어나 길가 한쪽에 앉아서 목발을 점검해 보는 모습을 남들에게 자주 보여 준다. 그렇게 부러지는 목발의 사건을 겪을 때마다 내 가슴 한쪽은 아픔으로 채색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담담해 질 때도 됐는데... 평생 겪어야 할 일이기에 초연해지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길을 가던 어느 날, 그 날은 목발이 부러져서 제법 많이 다쳤었다. 속상해 있는 사연을 들은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고 좋은 목발을 사주고 싶은데 작은 마음만 보낸다면서 힘내라며, 목발을 사라고 목발 값을 보내준 친구를 잊지 못한다. 1년에 한번 얼굴을 볼 수 있을까 말까하는 친구지만, 남들이 이성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하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공감대를 형성했었는데, 내게 어려운 난관이 있을 때는 서슴없이 상의할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항상 조심스럽다.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친구가 바라는 무엇인가의 보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 사람이 허물이 있어야 그 사람에게서 더 인간다운 맛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말에 위안을 삼으며 나는 친구에게 맨 날 실수와 허물만 보여 준다. 그래도 지켜보면서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가끔씩 조언을 해 주는 친구, 그런 친구가 내게도 있어서 좋다. 한 달도 못 넘기던 목발을 1년을 넘게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친구의 마음이 항상 목발에 함께 있는가 보다.
친구란, 모두가 떠났어도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지팡이는 사람이 기력이 쇠하여 지팡이조차 의지할 수 없을 때까지 그 사람과 함께 있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까지 함께 가는 소중한 친구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노인들이 제일 아끼는 물건이 지팡이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인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지팡이리라. 가끔은 한쪽 구석에 내팽개쳐 놔도 싫다는 표정 없이 다시 찾아줄 노인을 기다려주는 멋진 친구. 내게도 노인들의 지팡이와 같은 멋진 친구가 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나와 함께 걸어다니는 목발. 진흙탕에도 빠지고, 바닷물 속에도 들어가 보고, 잔디도 밟아 보고, 산길도 함께 걸어 보는 친구. 좋은 곳이든지 나쁜 곳이든지 내가 가는 곳이면 언제나 함께 가 주는 친구. 너무 힘들게 길을 걸어갈 때면 잠시 쉬었다 가라고 자기 몸을 부러뜨려 쉬게 해 주는 친구. 하다 못해 내가 누워 있는 침대 곁에 조용하게 누워서 나를 기다려 주는 목발. 참 좋은 친구 아닌가?
인생은 안개와 같고 아침 이슬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도 맞다. 그러나 나는 인생을 무지개와 같다고 표현하고 싶다. 아름답게 이 세상에 펼쳐지지만 무지개는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와 같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좋을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힘들 때나 함께 그 길을 가주는 목발 같은 친구, 그런 친구를 한 두 명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 삶 속에서 그런 친구가 생기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내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자.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리라. 그렇게 믿고 살아가자. 안 그런가? 나의 친구여.
200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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