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깜짝 놀란 일을 겪었었다. 골목길에서 차 곁을 지나가는 어느 여자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그 여자를 만나지도 않았고, 일가 친척 중에도 없었다. 자식은 부모를 닮기에 알고 있는 어르신들을 떠올리며 그 여자와 비교를 해 보아도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날씬하게 잘 생긴 아가씨를 보았는데 그 여자도 눈에 익는다. 이거 내가 바람둥이도 아니고 어디서 보았을까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말했더니 해답이 나온다. 그건 연예인들의 멋진 부분만 선택하여 본인 얼굴을 성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처럼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한 광고회사가 13세에서 43세까지의 여성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68%가 "용모가 인생의 성패를 크게 작용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얼굴 예쁘기를 바라는 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같은가 보다. 얼굴 예쁜 것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많아진 것은 정착 농업사회에서 이동 도시 사회로의 변동에 따른 의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방학이 되면 성형외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명문대학에 다니는 여성들도 취직을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성형한다고 하는데, 심한 경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다고 하니 마음이 답답할 노릇이다. 한번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또 하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해 2차, 3차, 5차까지 성형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10번까지 자신의 얼굴을 뜯어고친 사람도 있다고 하니 놀랄 일이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가도 다시 하는 것처럼, 도박 중독자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며 손을 잘랐다가 발가락으로 했다는 것처럼, 얼굴을 자주 뜯어고치는 사람은 성형 중독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부모가 자식을 몰라볼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자신을 닮은 얼굴을 다 뜯어 고쳤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부모와 함께 있다면 누구를 닮았다고 할까?
어느 부부가 가정 법원에 이혼을 하러 왔는데 그 이유가 웃지 못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 참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본인들도 세상에서 제일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을 했었다. 결혼한 지 8개월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물론 당사자들의 아이였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가 두 부부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편은 마음속으로 아내를 의심하고 있었고, 아내는 부모를 닮지 않은 아이로 인해 고민을 하게 된다. 어른들에게 상의를 해 보니 아이는 어릴 때는 못생겼어도 자라면서 인물이 나고 점점 부모를 닮아 간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그 말에 위안을 삼으며 살아가다가 아이가 7살 때 부부 싸움을 크게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부모를 닮지 않는 아이가 싸움의 내용에 포함되고, 누구와 바람을 폈느냐고 공격하는 남편에게 결백하다고 대답을 해 보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혼을 하기 위해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의 과정에서 나타난 어이없는 내용은 부부가 모두 젊었을 때 성형수술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잘생길 수는 없지 않는가. 이렇게 웃지 못할 일들이 성형수술로 인해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얼마 전에 나에게 이메일 상담이 왔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생활로 들어갔는데 요즘은 자꾸 불안하여 잠을 이룰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는데 깊이 들어가 보니 마음이 무거운 내용이었다. 키도 작고 얼굴이 못생겼는데 특히 눈이 개구리 왕눈이처럼 튀어 나와 외모로만 보았을 때는 장애인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통신을 통하여 남자를 사귀게 되었고, 서로 펜팔을 하다보니 정도 들어서 만남을 갖게 되었단다. 만남이 길어지면서 서로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남자의 집에 인사를 갔었는가 보다. 희망을 안고 찾아갔었는데 상처만 입고 왔단다. 남자의 부모가 너무나 못생긴 며느리 감을 보고 결혼을 못하게 한단다. 한 두 번의 반대가 아니라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니 죽고만 싶단다.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만 변하지 않으면 견디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남자도 부모의 설득에 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온다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한다. 자기는 성형수술을 하려고 해도 돈도 없지만, 성형수술을 할 수 없는 신체적 구조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그에게 답을 해 주려고 하다가 잠시 머뭇거림은 나의 조언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이 없는 결혼이라면 평생 올무가 될 것인데, 성형수술은 이런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유행되면서 웃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너무나 못생긴 얼굴로 인하여 멸시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그가 40대에 들어서서 서서히 인기를 얻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야유를 받으며 무대에서 끌려 내려오는 것은 수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개성으로 변화 시켰다. 현실에서 좌절하지 않고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 마지막 남았던 삶 속에서 참 귀한 일들을 하면서 전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셨던 분이었다. 그렇게 개성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분들도 많지 않는가.
못생긴 것이 죄는 아닐 진데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 그 속에서 개성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갈 용기가 있어야겠다. 미스코리아를 피그미족이 사는 마을에 데려다 놓으면 피그미족도 미스코리아를 예쁘다고 할까? 아니면 키가 너무 큰 괴물이라고 할까? 아니면 맛있는 식량인데 먹을게 없다고 할까... 만약 못생긴 사람이 순수혈통이라며 존경과 보호를 받는 세상이라면 서로 못생긴 얼굴로 성형수술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사회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때다. 시골이 고향이 나는 1년에 한번 이상은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 들려 보면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동력도 없는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분들의 얼굴을 보면 거의가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어릴 때 30년 전만 해도 그렇게 멋지게 보이던 분이 이제는 볼품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음을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에 고향으로 피서를 갔던 지인이 동네 어르신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모두가 비슷하게 생기셨다고 신기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조미인, 성형미인이 되려고 하는데는 남녀가 따로 없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얼굴 예쁜 것보다 마음 예쁜 것이 더 예쁘다"고 했다. 얼굴이 예쁘면 화근(禍根)이 되지만 마음이 예쁘면 복근(福根)이 된다. '마음이 고아야지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는 가요의 가사는 꼭 여자만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개개인의 얼굴은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못생긴 얼굴이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이다. 세상에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얼굴이다. 그런데도 얼굴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 그 시간, 그 열정, 그 돈이 있다면 자신의 속부터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세월이 흐르면 금방 변할 외면을 가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모에 투자하는 시간의 절반만이라도 내면에 투자한다면, 현재보다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멋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개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 유일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혜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알고 그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2002.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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