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나눔이 만난 어떤 상인

자오나눔 2007. 1. 17. 10:39

우리 서민들은 한겨울을 보내는데 세 가지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고 한다. 첫째는 양곡이요, 둘째는 김치요, 셋째는 땔감이란다. 그 중에 김치는 한 겨울의 식탁을 푸짐하게 차릴 수 있는 귀한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매서운 추위가 오기 전에 밭에 있는 배추와 무를 뽑아서 김치를 담았다. 김장을 할 때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 젓갈이다. 어떤 젓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김치 맛이 달라진다고 할머님들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 자오쉼터에도 김장을 해야 한다. 텃밭에 심어 두었던 700포기의 고추에서 빛깔 좋은 고춧가루를 만들었고, 1,000포기의 배추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쪄 있다. 아가씨들의 종아리 같은 무 300여개는 미리 캐어 땅속에 묻어 두었다. 생강농사까지 잘 되어 김장을 하는데 문제가 없게 되었다. 남들은 고추농사 다 망치고, 배추 농사도 잘 안됐다고 울쌍인데 감사하게도 우리 장애인 공동체에는 농사가 잘 됐다. 물론 아내의 남다른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말이다.

강경젓갈이 가장 맛있고 유명하다며 젓갈을 사러 가자고 한다. 워낙 장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터라 주저없이 차에 오른다.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종섭씨가 차에 탔다. 우리가 손수 키운 농산물에 가장 맛있다는 강경젓갈을 사용하여 김장을 한다는 마음에 기분 좋은 출발을 한다. 화성에서 평택 안성간 도로를 달려 천안서 공주 논산간 민자 고속도로를 달리니 금방 논산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이고, 강경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강경으로 들어서니 짭짤한 냄새가 풍겨온다. 커다란 간판들에는 젓갈의 고장임을 알리는 문구들이 우리를 반긴다. 강경포구까지 구경을 한 다음에 돌아 나오면서 사람들이 많은 도매상으로 들어갔다.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광천상회 3호점'이라는 글씨가 기둥에 써 있다.

드넓은 공간에 수많은 젓갈들이 잘 정리되어 진열되어 있다. 커다란 통에는 맛깔 좋은 젓갈들이 주인의 인심을 기대하는 듯 가득 담겨져 있고, 양념이 잘 되어 있는 젓갈들도 눈에 뜨인다. 숙성실에 들어 가 보았다. 수많은 드럼통에는 각 종류대로 젓갈을 처음 담근 날짜가 적혀 있다. 보기 좋은 오젓, 육젓도 눈에 뜨인다. 청결하게 청소 되어 있는 숙성실을 둘러 보곤 밖으로 나오니, 장모님과 아내가 가격 흥정을 하고 있다. 많이 사니까 조금 더 깎아 달라는 흥정이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는 종업원. 지켜보다가 내가 나섰다.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내 명함을 꺼내 드리며 설명을 했다. 워낙 목소리가 커서 그랬을까... 아니면 목발을 짚고 말하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와 그랬을까.

어느 여자분이 오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 장애인 공동체에서 먹을 김장을 하려는데 이곳의 젓갈이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화성시에서 내려왔는데 제 가격을 받더라도 더 주실 수 있는만큼만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종업원에게 막 담으라고 하신다. 몇 개 더 담으라고 하신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잡젓, 갈치젓 등을 가득 담고 있는 종업원, 양념이 되어 있는 코너에 가서 어리굴젓, 낙지젓, 명란젓도 조금씩 산다. 곁에 있는 액젓도 몇통 산다. 모아 놓으니 무척 많다. 도매가격으로 20만원이 넘는다. 계산을 하는데 가격이 얼마 안된다. 의아해 하는 우리에게 "좋은 일 하는데 저희도 조금 보태겠습니다."하며 양념이 된 젓갈과 액젓 값만 받는다. 더 필요하다면 잡젓이나 황석어 젓을 더 드릴 수 있다고 하신다. 더 필요하면 다음에 사러 오겠다고 했지만 참 감사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 태평리 11-2번지에 있는 광천상회 3호점 박명순 사장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말씀을 해 주신다.
"이런 장사를 하며 살아도 남을 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감사하지요."
젓갈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끈한 1밥에 젓갈을 올려서 한입 덥썩 먹을 생각에 군침이 고인다.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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