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안, 난 그곳을 담안이라고 부른다. 최하 전과 3범 이상이 수감 생
활을 하고 있는 곳 안양 교도소. 3년째 방문을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전날에 방앗간에 떡을 주문해 놓고,
음료와 과일 커피 등을 준비해 놓고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방문을 계
속 할 것인가 방문을 중단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것이 출발하기 전까지
도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람은 이별을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
다.
세상에 수많은 이별이 있는데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있고, 가장 슬
픈 이별도 있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오랫동안 편히 살다가
장수하고 하늘나라에 가는 이별이고, 가장 슬픈 이별은 배신을 당한
후의 이별이란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물론 지금까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순수한 뜻으
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봉사자들에게 적잖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
도 있다. 거의 다 내가 바람막이를 해 왔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 종종
터지곤 했다. 그럴때마다 기도로 밀고 나갔었다. 그런데 이번 7월 17일
에 출소한 사람이 교도소 방문을 했던 봉사자를 찾아가 너무나 큰 상
처를 주고 연락을 끊었단다. 결국 그분들은 교도소 사역에는 발을 떼
게 되었고, 그 여파는 함께 방문했던 회원들마저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이럴 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
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다.
방문할 사람은 나와 아내 뿐이다. 망설이는 내게 아내는 또 한 번
격려를 해 준다. "교도소 사역 시작하며 이런 것 각오 안했느냐"는 것
이다. 이리 저리 연락을하여 말씀을 전해 줄 목사님을 섭외하고, 섹스
폰 연주를 해 주실 전도사님까지 합류하게 만든다. 4명으로 구색을 마
췄다. 오늘은 어떤 체험을 주실 것인가... 기대를 하며 안양교도소로 출
발한다.
조금 일찍 도착을 했다. 새로 바뀐 교무과장님과 잠시 면담을 한다.
재소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로 잠시 토론을 나눈다.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 나라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을 설명해 주시는 교무과장
님, 따라 놓은 녹차가 적당히 식을 무렵 대화는 끝나고 교육관으로 이
동을 한다. 이번엔 더 많은 재소자들이 참석을 했다. 평상시 방문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에 궁금해하는 눈빛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예
배를 인도하시라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직도 내 마음은 풀리지
않고 있는가 보다.
준비해 간 음식을 차린다. 아내랑 재소자 몇 사람이 떡을 담고, 포
도를 씻어 오고, 빵을 돌리고, 커피를 타고, 음료수를 돌린다. 포도는
교도소에 반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포도로 술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점심시간이었는데 우리를 기다리며 점심을
조금 먹고 왔단다. 적잖게 마련해 간 음식이 다 떨어졌다. 섹스폰과 하
모니카, 찬양 등이 어우러진다. 뭔가 궁금해하는 그들을 느낀다. 솔직
하고 싶었다. 모든걸 이야기해주니 술렁거린다. 당장 기소중지를 내리
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마음도 이야가하며 그들에게 부탁을 한
다. 출소를 하더라도 당당하자고... 멋지게 살아보자고...
교도관이 귀엣말을 해 준다. 정신 교육을 더 시켜 달란다. 감나무의
비유를 들려준다. 아무리 크고 탐스러운 감에서 나온 씨라도 감씨를
심으면 그 나무에서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는 고염이라
는 작은 열매가 생긴다. 감나무에서 맛있는 감을 열게 하려면 어려서
접을 붙여야만 탐스런 감을 열게 한다. 아픔이 없는 감나무는 고염을
열게 할뿐이다. 사람이 다 사람이냐? 이렇게 힘든 고비를 잘 넘겨야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부탁만 하고 왔다. 독하
게 할 수 없었다.
공식적인 시간을 마치고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모두 떠난
후 잠시 앉아 있는데 어떤 재소자가 개인 면담을 신청한다. 나는 법무
부 소속 교육 위원으로 위촉이 되어 있기에 개인 면담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면담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의 사연은 구절양장이다.
억울하게 강간 협의를 쓰고 7년형을 받았는데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단다. 아무리 자기는 아니라고 애원을 해도 방법이 없었단다. 결국
교도소 안에서 자해를 하게 되는데 자기 성기를 밑뿌리까지 싹둑! 해
버렸단다. 그러면서 바지를 내려 보여 주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없다. 남자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 이제 35이라는데... 앞
으로 어떻게 살래?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가슴이 아프다.
이제 정신병동이 있는 곳으로 이감을 가게 된단다. 면회도 안되니
서신 왕래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의 모습은 간절했
다. 그의 손을 잡고 고개만 끄덕여 준다. 모두가 감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우리도 교도소를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머릿속엔 '무슨 일이 있어도 교도소 사역을 중단하면
안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2000/9/8
부천에서 나눔
활을 하고 있는 곳 안양 교도소. 3년째 방문을 하고 있지만 이번처럼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전날에 방앗간에 떡을 주문해 놓고,
음료와 과일 커피 등을 준비해 놓고도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방문을 계
속 할 것인가 방문을 중단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것이 출발하기 전까지
도 고민을 하게 만든다. 사람은 이별을 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한
다.
세상에 수많은 이별이 있는데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있고, 가장 슬
픈 이별도 있다고 한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오랫동안 편히 살다가
장수하고 하늘나라에 가는 이별이고, 가장 슬픈 이별은 배신을 당한
후의 이별이란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물론 지금까지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순수한 뜻으
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봉사자들에게 적잖은 상처를 주는 사람들
도 있다. 거의 다 내가 바람막이를 해 왔지만 나도 모르는 일이 종종
터지곤 했다. 그럴때마다 기도로 밀고 나갔었다. 그런데 이번 7월 17일
에 출소한 사람이 교도소 방문을 했던 봉사자를 찾아가 너무나 큰 상
처를 주고 연락을 끊었단다. 결국 그분들은 교도소 사역에는 발을 떼
게 되었고, 그 여파는 함께 방문했던 회원들마저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이럴 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
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다.
방문할 사람은 나와 아내 뿐이다. 망설이는 내게 아내는 또 한 번
격려를 해 준다. "교도소 사역 시작하며 이런 것 각오 안했느냐"는 것
이다. 이리 저리 연락을하여 말씀을 전해 줄 목사님을 섭외하고, 섹스
폰 연주를 해 주실 전도사님까지 합류하게 만든다. 4명으로 구색을 마
췄다. 오늘은 어떤 체험을 주실 것인가... 기대를 하며 안양교도소로 출
발한다.
조금 일찍 도착을 했다. 새로 바뀐 교무과장님과 잠시 면담을 한다.
재소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로 잠시 토론을 나눈다.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 나라 교도소의 열악한 환경을 설명해 주시는 교무과장
님, 따라 놓은 녹차가 적당히 식을 무렵 대화는 끝나고 교육관으로 이
동을 한다. 이번엔 더 많은 재소자들이 참석을 했다. 평상시 방문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기에 궁금해하는 눈빛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예
배를 인도하시라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직도 내 마음은 풀리지
않고 있는가 보다.
준비해 간 음식을 차린다. 아내랑 재소자 몇 사람이 떡을 담고, 포
도를 씻어 오고, 빵을 돌리고, 커피를 타고, 음료수를 돌린다. 포도는
교도소에 반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포도로 술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전에 점심시간이었는데 우리를 기다리며 점심을
조금 먹고 왔단다. 적잖게 마련해 간 음식이 다 떨어졌다. 섹스폰과 하
모니카, 찬양 등이 어우러진다. 뭔가 궁금해하는 그들을 느낀다. 솔직
하고 싶었다. 모든걸 이야기해주니 술렁거린다. 당장 기소중지를 내리
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마음도 이야가하며 그들에게 부탁을 한
다. 출소를 하더라도 당당하자고... 멋지게 살아보자고...
교도관이 귀엣말을 해 준다. 정신 교육을 더 시켜 달란다. 감나무의
비유를 들려준다. 아무리 크고 탐스러운 감에서 나온 씨라도 감씨를
심으면 그 나무에서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는 고염이라
는 작은 열매가 생긴다. 감나무에서 맛있는 감을 열게 하려면 어려서
접을 붙여야만 탐스런 감을 열게 한다. 아픔이 없는 감나무는 고염을
열게 할뿐이다. 사람이 다 사람이냐? 이렇게 힘든 고비를 잘 넘겨야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부탁만 하고 왔다. 독하
게 할 수 없었다.
공식적인 시간을 마치고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다. 모두 떠난
후 잠시 앉아 있는데 어떤 재소자가 개인 면담을 신청한다. 나는 법무
부 소속 교육 위원으로 위촉이 되어 있기에 개인 면담은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면담실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의 사연은 구절양장이다.
억울하게 강간 협의를 쓰고 7년형을 받았는데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었단다. 아무리 자기는 아니라고 애원을 해도 방법이 없었단다. 결국
교도소 안에서 자해를 하게 되는데 자기 성기를 밑뿌리까지 싹둑! 해
버렸단다. 그러면서 바지를 내려 보여 주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없다. 남자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 이제 35이라는데... 앞
으로 어떻게 살래?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가슴이 아프다.
이제 정신병동이 있는 곳으로 이감을 가게 된단다. 면회도 안되니
서신 왕래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의 모습은 간절했
다. 그의 손을 잡고 고개만 끄덕여 준다. 모두가 감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우리도 교도소를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머릿속엔 '무슨 일이 있어도 교도소 사역을 중단하면
안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2000/9/8
부천에서 나눔
'봉사중독 행복전염 > 봉사 댕겨 왔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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