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사랑의 집] 김밥만 먹는 아이들

자오나눔 2007. 1. 17. 12:11
  광명 사랑의집에는 52명의 장애우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1년 사시사철 끼니때마다 그들은 김밥만 먹는다. 준용이와 상현이, 특별히 김밥을 좋아하거나 김밥을 먹지 않으면 몸이 아파 오는 것도 아니다. 그들도 보통 사람처럼 국에 밥을 말아서 먹고도 싶고, 다른 반찬도 쉽게 먹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먹을 수가 없다.
  뇌성마비.... 온몸이 제멋대로 뒤틀려 숟가락을 잡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몸으로 국을 먹기 위해 숟가락에 담았다간 모두 흘리고 만다. 봉사자가 숟가락으로 떠 먹여 주려해도 자기 마음대로 입을 벌릴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것도 쉽지 않다. 그나마 그들의 재활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김에 밥을 싸서 먹기 좋게 만들어 놓으면 포크로 김밥을 찍어 몸을 뒤틀리며 입으로 구겨 넣는다. 입에 넣고 몸을 발랑 뒤집어야 넘어가는 현실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무척 밝기만 하다. 누구보다 기도를 많이 하는 아이들. 어느새 그 아이들도 열아홉, 스므살이 됐다.

  이제 며칠후면 설이다.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란다. 모처럼 우리 가족도 고향을 방문한다. 부모님 산소도 돌아보고 작은 아버님을 찾아뵈려고 간다. 그 전에 사랑의집을 방문해야 한다. 5일전에 방문을 했었지만 다시 그들을 찾는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외로움을 발견한다. 왜일까...? 아... 며칠 후면 설이구나. 누군가가 설날 고향 간다고 자랑을 했단다. 비록 몸은 장애가 있지만 정신이 맑은 친구들은 부모형제가 그리운 건 당연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즐거운 찬양시간을 갖는다.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내가 불러주는 하모니카 연주가 무척 좋은가 보다. 어느새 희숙이와 윤숙이가 앞으로 나와 환상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내가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간증을 들려준다. 봉사를 오셨던 다른 팀들도 함께 은혜를 나눈다.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오고 있다. 오늘 메뉴는 닭도리탕과 잡채와 소고기 미역국, 김장김치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나눈다. 목욕탕에서는 여자 장애우들의 목욕이 한창이다. 서서히 빨래가 쌓이기 시작한다. 미리 벗어 놓았던 빨래는 다른 팀들이 마치기로 했다.

  주방에서 식사 준비가 다 됐다는 연락이 온다. 우선 남자 봉사자들에게는 빨래를 옮겨서 물에 담가 놓으라고 한다. 세제를 풀고 커다란 다라이 3개에 빨래를 담가 놓는다. 방으로 들어오니 식탁이 차려지고 있다. 푸짐하게 상이 차려진다. 식사기도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닭도리탕을 6개월만에 먹어본다는 최간사님의 고백이 마음을 찡하게 한다. 식사를 한 후 휴식 시간도 없이 바로 빨래를 하러 가는 남자 회원들, 기회님, 정범님, 충용님, 준열이가 장화를 신고 자리를 잡는다. 속옷은 삶아서 빨라고 부탁을 드린다. 마치 내가 사랑의 집 담당자 같다는 농담이 싫지 않음은 왜일까?
  다시 주방으로 와보니 엄청나게 많은 설거지 할 그릇이 쌓여있다. 아내와 연진이의 몫이다. 구석구석 주방을 청소하는 연진이, 숟가락과 젓가락, 물컵 등을 뜨거운 물에 삶아내는 아내, 많은 사람이 음식을 먹기에 청결이 최우선이라는 아내의 철학이 보기 좋다. 잠시 무료급식소에 전화를 하여 진행 상황을 물어 보니, 오늘은 공공근로자들도 많이 오셔서 식사를 하셨단다. 이러다간 200kg의 쌀이 금방 바닥나겠다며 엄살을 부리는 선린님의 목소리에 힘이 있다.

  목욕이 끝났는가 보다. 빨래가 그만 나온다. 빨래터에 연진이도 참여를 한다. 삶고 있는 속옷은 연진이와 준열이의 몫이다. 빨래판을 놓고 부지런히 비빈다. 부지런히 밟으며 구정물을 빼내고 탈수를 시키는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들. 어느 아저씨가 쌀을 어깨에 메고 나르고 있다. 누군가가 쌀을 후원해 주셨나 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말이 어울리는 생활이다.
  학생들 몇 명이 봉사를 왔다. 한참 사춘기인 지훈이와 태훈이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어느새 친구가 되어 가는 그들을 보며 장애인들의 사랑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다. 한잔의 커피가 맛있다. 빨래가 다 됐단다. 복음성가 '주만 바라볼지라' 테이프를 사다 달라는 봉이 할머니의 부탁을 받으며 우리들은 사랑의집을 떠나고 있다. 이들에게 이번 설이 설움이 북받치는 설이 아니라 행복한 설이 되기를 바래본다. 자꾸 김밥을 먹고 있는 준용이와 상현이 모습이 아른거린다. 다음엔 녀석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마련해 가야겠다.
2001.1.18
부천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