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그들은 우리를 반기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큰소리로 반
기며 달려나와 마중하는 친구들도 있다. 사랑의 집을 방문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용하다. 안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가 보다. 광
명 사랑의 집은 60여명의 장애우가 모여 살고 있는 장애인 공동체이다. 아
직 정식 법인도 아니고 비영리 민간단체이기에 외부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
가기 힘든 공동체이다.
그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해 주겠노라며 새벽 시장을 보고 왔던 아내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봉사자들도 파악이 되고 모두 집결지에서 만나서 사랑
의 집으로 이동을 했다. 말없이 반기는 500년된 은행나무 할머니는 싱싱한
젊은 나무처럼 토실토실한 은행을 가지가 무겁다고 할 정도로 달고 있다.
공동체 안으로 짐을 들고 들어가니 인천 백마장 교회에서 오셔서 인형극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잠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인형극이 끝나자 장애우들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무엇이 이들이 이렇게
반갑게 맞이하게 할까... 아마 정이리라. 7년동안 변함없이 찾아온 정 때문이
리라. 서로가 자랑하고픈 것도 많은가 보다. 무언가 말을 하는데 알아먹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겠
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녀석이 슬금슬금 내 곁으로 기어온다. 영희다. 그를
보면 커다란 얼굴에 왕방울 만한 눈동자와 입가에 흐르는 선한 미소가 먼저
우리를 반긴다. 자세히 보노라면 그의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나 있고,
오른손은 마비되어 쓸 수 없고, 왼손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리를 이동할 때는 엉덩이로 기어간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앉은뱅이였다. 말
도 어눌하다. 그의 말을 알아먹으려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중복 장애가
심한 32살의 총각이다.
영희는 나에게 명찰을 보여 주며 뭐라고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명찰에
있는 사진이 송명희 시인이라는 말이었다. 정말 명찰에 그녀의 사진이 있었
다. 뇌성마비 장애우이지만 하늘이 내린 시인이라는 송명희. 그녀의 얼굴은
영희가 보여준 스케치북에도 있었다. 겨우 움직이는 왼손으로 그림 그리기
를 좋아하는 영희, 그녀석은 나에게 그림 그린 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정확한 선 터치는 못하지만 제법 잘 그리는
솜씨다.
녀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송명희 시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인다. 어디서 들었을까... 누가 가르쳐 준걸까... 유난히 찬
양하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그녀가 작사한 시를 보며 은혜를 받은 것일까?
아무튼 정학한 것은 모르지만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녀석의 모습이다. 녀석
이 지금의 장애를 극복하고 작은 부분이나마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래 본다.
맛있는 해물 칼국수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그사이 봉사자들이 푸짐한 식
탁을 준비한 것이다. 모두 한 목소리로 식사 기도를 하자고 했더니 "날마다
우리에게..."를 힘차게 부른다. 가장 조용한 시간은 식사시간이다. 괴성을
지르는 친구들도 조용하다. 먹을 때의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주면 주는 대로 먹는 친구들이라 일정한 량을 주어야 한다. 먹는 대로 주었
다가는 배설 문제로 고생을 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아쉬운 건 시간이다. 각자의 삶이 있기에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
아와야 하는 우리들.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사랑의 집을 떠나는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벌써부터 겨울을 지내야 할 그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20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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