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길가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나리를 보면서 피부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한다. 날씨가 포근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음력으로는 2월 초순이라 그런지 쌀쌀한 기운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이 춘분이라고 했다. 봄... 봄이다. 그런데 18년만에 처음이라는 황사가 짙은 안개를 연상하게 대지를 덮고 있었다. 부족한 봉사자 때문에 항상 걱정을 하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회사에 병가를 냈다는 진달래님이 참석하기로 하고, 미룡님, 제이비님, 큰샘물, 그리고 내가 참석하니 봉사팀은 구색을 갖추게 된다.
모처럼 비빔밥을 해 주겠노라며 전날 밤 늦게까지 우거지를 삶아 잘게 찢어 놓고, 무 생채와 겉절이까지 담그고 있는 아내는 늦게 잠잘에 들었건만 아침부터 분주하다. 시금치도 삶고, 미나리도 삶고, 무, 호박, 동태까지 준비를 해 놓는다. 차에 쌀을 싣고 사랑의 집으로 가면서 콩나물이 싸다는 시장에 들려 콩나물까지 사고 있다. 오늘 사랑의 집 장애우들은 별미를 먹을 것 같다.
소사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한 차에 타고 사랑의 집으로 달려 간다.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를 보면서, 하얀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목련을 보면서 저마다 가슴속에 시 한수씩을 쓰고 있을 법도 하다. 봄이 되니 이곳 저곳에서 건축을 하려는지 건축 부지를 다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산기슭에 멋진 카페를 만드려는지 조감도를 세워 놓고 땅을 다듬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이다.
신작로를 지나 동네 길로 들어 서니 도덕산이 보인다. 도덕산에도 황사는 예외없이 덮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려는 듯 골목 담 넘어로 노란 산수유가 고개를 내밀며 반기고 있다. "저게 산수유야"라는 내 설명에 산수유를 처음 보는 일행들은 신기해 한다. 500년 된 은행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마련해 간 짐을 내린다. 짐이 많아 두번씩 나르기도 했다.
실내로 들어 서려는데 엄청 많은 신발들이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 학교에서 견학을 왔는가 보다. 짐을 들고 들어서니 방안이 가득하다. 준비해 온 과자류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방과 방안을 보면서 구경꾼의 자세가 되어 본다. 쌀을 찾는단다. 분명 쌀을 싣고 왔는데 안으로 가져 왔는데 없단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니 예배당 재단에 두었다는 말이 들린다. 웃으며 가져 오라고 하니 어느 학생이 금방 가져 온다. 이번 학생들은 미션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인가 보다.
쌀을 씻어 앉히고 나물을 행궈 물기를 꼭 짜 놓고... 한번도 생선을 만져보지 않았다는 진달래님은 동태를 씻어 놓고, 달걀을 후라이팬에 한개씩 깨어 넣고 익히고 있다. 비빔밥에 한개씩 얹어질 재료이다. 나물을 준비한 미룡님은 나물을 볶기 시작한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하지만 새로운 비법을 배운다며 좋아 한다. 아내는 각종 재료에 양념을 넣으며 간을 맞춘다. 젱비님도 주방에 들어와 한몫을 거들고 있다. 시금치 나물, 미나리 나물, 호박나물, 무 나물, 콩나물, 무 생채, 겉절이, 우거지 나물, 동태찌개, 달걀 부침개, 양념 장까지 우와~ 진수 성찬이다.
주발에 각종 재료가 조금씩 담겨지고, 따끈한 하얀 쌀밥이 얹어지고, 달걀 부침개와 양념장이 마지막으로 얹어 지면서, 얼큰한 동태찌개와 함께 각 개인에게 차려진다. 방안에 가득 차 있던 백영고교 학생들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장애우들이 편하게 식사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들만의 배려이다. 상 앞에 앉아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맛있게 식사를 한다. 맛있게 먹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우리 일행들. 참 멋지다.
우리도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비빔밥을 한그릇씩 비벼본다. 십시일반으로 나누자며 비벼 놓은 밥을 한 숟가락씩 내게 덜어 오니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변한다. 일흔이 넘으신 권사님께 많이 잡수시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변함없이 봉사를 오시는 모습에 은혜를 받는다고 했더니 권사님의 대답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늙은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무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게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감사... 감사에는 조건이 없었다.
맛있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백영고등학교 학생 세명의 지원을 받아 설거지를 한다.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왕좌왕 시끌벅적하는 실내 분위기... 학생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인도해 온 김인경 선생님게 부탁하니 흔쾌히 승락을 해 주신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봉사와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준다. 나누는 것은 생활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그들에게 복지사회를 만들어 가는 귀한 일군들이 되라며 당부도 해 본다. 그들에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 본다. 언젠간 그들이 그 때 그 순간이 참 소중했다는 고백을 하기 바라며...
간단한 교육을 마치자 설거지도 끝났다. 백영고등학교 학생들은 레크레이션을 한다며 준비를 하고 있다.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해 놓고 우리는 사랑의 집을 떠나 오고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황사로 안개 가득한 세상처럼 보인다. 황사가 걷히면 다시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삶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모두 벗겨지고 밝은 날만 있기를 기도해 보며 차에 올랐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2. 3. 21
길가에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나리를 보면서 피부로 다가오는 봄을 맞이한다. 날씨가 포근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음력으로는 2월 초순이라 그런지 쌀쌀한 기운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늘이 춘분이라고 했다. 봄... 봄이다. 그런데 18년만에 처음이라는 황사가 짙은 안개를 연상하게 대지를 덮고 있었다. 부족한 봉사자 때문에 항상 걱정을 하는데 이번에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 회사에 병가를 냈다는 진달래님이 참석하기로 하고, 미룡님, 제이비님, 큰샘물, 그리고 내가 참석하니 봉사팀은 구색을 갖추게 된다.
모처럼 비빔밥을 해 주겠노라며 전날 밤 늦게까지 우거지를 삶아 잘게 찢어 놓고, 무 생채와 겉절이까지 담그고 있는 아내는 늦게 잠잘에 들었건만 아침부터 분주하다. 시금치도 삶고, 미나리도 삶고, 무, 호박, 동태까지 준비를 해 놓는다. 차에 쌀을 싣고 사랑의 집으로 가면서 콩나물이 싸다는 시장에 들려 콩나물까지 사고 있다. 오늘 사랑의 집 장애우들은 별미를 먹을 것 같다.
소사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한 차에 타고 사랑의 집으로 달려 간다.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개나리를 보면서, 하얀 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목련을 보면서 저마다 가슴속에 시 한수씩을 쓰고 있을 법도 하다. 봄이 되니 이곳 저곳에서 건축을 하려는지 건축 부지를 다듬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산기슭에 멋진 카페를 만드려는지 조감도를 세워 놓고 땅을 다듬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이다.
신작로를 지나 동네 길로 들어 서니 도덕산이 보인다. 도덕산에도 황사는 예외없이 덮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려는 듯 골목 담 넘어로 노란 산수유가 고개를 내밀며 반기고 있다. "저게 산수유야"라는 내 설명에 산수유를 처음 보는 일행들은 신기해 한다. 500년 된 은행 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마련해 간 짐을 내린다. 짐이 많아 두번씩 나르기도 했다.
실내로 들어 서려는데 엄청 많은 신발들이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어느 학교에서 견학을 왔는가 보다. 짐을 들고 들어서니 방안이 가득하다. 준비해 온 과자류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주방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방과 방안을 보면서 구경꾼의 자세가 되어 본다. 쌀을 찾는단다. 분명 쌀을 싣고 왔는데 안으로 가져 왔는데 없단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니 예배당 재단에 두었다는 말이 들린다. 웃으며 가져 오라고 하니 어느 학생이 금방 가져 온다. 이번 학생들은 미션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인가 보다.
쌀을 씻어 앉히고 나물을 행궈 물기를 꼭 짜 놓고... 한번도 생선을 만져보지 않았다는 진달래님은 동태를 씻어 놓고, 달걀을 후라이팬에 한개씩 깨어 넣고 익히고 있다. 비빔밥에 한개씩 얹어질 재료이다. 나물을 준비한 미룡님은 나물을 볶기 시작한다. 아내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하지만 새로운 비법을 배운다며 좋아 한다. 아내는 각종 재료에 양념을 넣으며 간을 맞춘다. 젱비님도 주방에 들어와 한몫을 거들고 있다. 시금치 나물, 미나리 나물, 호박나물, 무 나물, 콩나물, 무 생채, 겉절이, 우거지 나물, 동태찌개, 달걀 부침개, 양념 장까지 우와~ 진수 성찬이다.
주발에 각종 재료가 조금씩 담겨지고, 따끈한 하얀 쌀밥이 얹어지고, 달걀 부침개와 양념장이 마지막으로 얹어 지면서, 얼큰한 동태찌개와 함께 각 개인에게 차려진다. 방안에 가득 차 있던 백영고교 학생들은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장애우들이 편하게 식사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들만의 배려이다. 상 앞에 앉아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자 맛있게 식사를 한다. 맛있게 먹는 그 모습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우리 일행들. 참 멋지다.
우리도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비빔밥을 한그릇씩 비벼본다. 십시일반으로 나누자며 비벼 놓은 밥을 한 숟가락씩 내게 덜어 오니 분위기가 웃음바다로 변한다. 일흔이 넘으신 권사님께 많이 잡수시라고 인사를 드리면서, 변함없이 봉사를 오시는 모습에 은혜를 받는다고 했더니 권사님의 대답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늙은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요..." 무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내게 있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감사... 감사에는 조건이 없었다.
맛있는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백영고등학교 학생 세명의 지원을 받아 설거지를 한다. 열심히 봉사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우왕좌왕 시끌벅적하는 실내 분위기... 학생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인도해 온 김인경 선생님게 부탁하니 흔쾌히 승락을 해 주신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봉사와 삶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 준다. 나누는 것은 생활이 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그들에게 복지사회를 만들어 가는 귀한 일군들이 되라며 당부도 해 본다. 그들에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 본다. 언젠간 그들이 그 때 그 순간이 참 소중했다는 고백을 하기 바라며...
간단한 교육을 마치자 설거지도 끝났다. 백영고등학교 학생들은 레크레이션을 한다며 준비를 하고 있다.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해 놓고 우리는 사랑의 집을 떠나 오고 있었다. 여전히 하늘은 황사로 안개 가득한 세상처럼 보인다. 황사가 걷히면 다시 깨끗한 세상을 볼 수 있겠지? 우리들의 삶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모두 벗겨지고 밝은 날만 있기를 기도해 보며 차에 올랐다.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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