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진 그녀
그녀 나이 쉰 여섯, 옛날 같으면 할머니라는 말을 듣겠지만, 요즘은 중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와 내 아내와는 열 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그래도 그녀들은 친구처럼 다정한 자매처럼 다정하게 살아간다. 아내가 젊었을 때 불공을 드리러 다니고,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보고 그럴 때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이제 아내는 절실한 기독인이 되었고 그분은 불자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신앙이 다르면 약간은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친 자매도 아니지만 참 다정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3년 동안 무료 급식을 해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봉사자였다. 너무나 바쁜 세상이라 생각은 해 보지만 아쉽기도 했었다. 아내 혼자 말없이 꾸려 오던 무료 급식소에 어느 날 나타난 그녀. 그녀는 그 후로 매일 무료 급식소에 나와서 아내를 도와 봉사를 해 왔다. 말보다 실천으로 나눔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내외가 지방에 출타를 하거나 교도소 봉사나, 다른 곳에 봉사를 가면서도 안심하고 무료 급식소를 맡기고 갈 수 있었다. 가끔씩 누가 나눔에 불자가 와서 봉사를 하느냐고 물어 보면 여지없이 아내와 내게 한마디씩 듣는다. 그렇게 말로 핀잔하지 말고 직접 봉사라도 해 보고 그런 말하시라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고...
지금까지 무료 급식을 했던 가게를 오늘 정리했었는가 보다. 가게를 비워 주는 입장에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뒤꼍에 있던 연탄 부스러기까지도 청소를 했던가 보다. 콧구멍까지 시커멓게 변해 버렸고 영락없는 막노동 자의 모습이다. 가게를 모두 정리해서 주인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아내와 함께 목욕탕을 갔었는가 보다. 함께 목욕을 하면서 그녀가 아내에게 말한 내용은 충격이었다. 20살 때 시집가면서 목욕탕에 가 보고 36년 만에 처음이란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집에서 목욕을 해 왔던 그녀는 화려하기만 한 목욕탕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삶, 그렇게 살아오면서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던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세상을 알았어야 했는데...
아내와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도 5년 전에 공동 목욕탕에 가보고 그 후론 발을 끊었었다. 온몸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 있었지만 항상 당당했던 나는 그 날도 친구의 부축을 받아 목욕탕엘 갔었다. 그때 목욕을 하던 어떤 아이가 내 몸을 보고 놀래서 기절을 해 버렸다. 그 후론 나는 집에서 하게 되었다. 나와 그녀... 똑 같이 집에서 목욕을 해 왔지만 그녀의 눈물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당뇨로 고생을 하고 있는 그녀지만 언제나 웃으며 살아간다. 아마 그녀는 내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자그마한 보따리를 챙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설 것이다. 어쩌면 전화를 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지역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그런 전화가 오면 명쾌한 대답을 해 주어야지. "당연히 방법이 있지요 한 번 방문해 봅시다."라고...
2002. 4. 9
그녀 나이 쉰 여섯, 옛날 같으면 할머니라는 말을 듣겠지만, 요즘은 중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세상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와 내 아내와는 열 살의 나이 차이가 있다. 그래도 그녀들은 친구처럼 다정한 자매처럼 다정하게 살아간다. 아내가 젊었을 때 불공을 드리러 다니고, 무당을 찾아다니며 점을 보고 그럴 때 알게 된 사이라고 한다. 이제 아내는 절실한 기독인이 되었고 그분은 불자가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신앙이 다르면 약간은 거리를 두게 되는데 그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친 자매도 아니지만 참 다정하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 눈에도 참 아름답게 보인다.
3년 동안 무료 급식을 해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봉사자였다. 너무나 바쁜 세상이라 생각은 해 보지만 아쉽기도 했었다. 아내 혼자 말없이 꾸려 오던 무료 급식소에 어느 날 나타난 그녀. 그녀는 그 후로 매일 무료 급식소에 나와서 아내를 도와 봉사를 해 왔다. 말보다 실천으로 나눔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내외가 지방에 출타를 하거나 교도소 봉사나, 다른 곳에 봉사를 가면서도 안심하고 무료 급식소를 맡기고 갈 수 있었다. 가끔씩 누가 나눔에 불자가 와서 봉사를 하느냐고 물어 보면 여지없이 아내와 내게 한마디씩 듣는다. 그렇게 말로 핀잔하지 말고 직접 봉사라도 해 보고 그런 말하시라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고...
지금까지 무료 급식을 했던 가게를 오늘 정리했었는가 보다. 가게를 비워 주는 입장에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뒤꼍에 있던 연탄 부스러기까지도 청소를 했던가 보다. 콧구멍까지 시커멓게 변해 버렸고 영락없는 막노동 자의 모습이다. 가게를 모두 정리해서 주인에게 열쇠를 넘겨주고 아내와 함께 목욕탕을 갔었는가 보다. 함께 목욕을 하면서 그녀가 아내에게 말한 내용은 충격이었다. 20살 때 시집가면서 목욕탕에 가 보고 36년 만에 처음이란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집에서 목욕을 해 왔던 그녀는 화려하기만 한 목욕탕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살아온 삶, 그렇게 살아오면서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던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세상을 알았어야 했는데...
아내와 그녀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도 5년 전에 공동 목욕탕에 가보고 그 후론 발을 끊었었다. 온몸이 화상으로 흉측하게 변해 있었지만 항상 당당했던 나는 그 날도 친구의 부축을 받아 목욕탕엘 갔었다. 그때 목욕을 하던 어떤 아이가 내 몸을 보고 놀래서 기절을 해 버렸다. 그 후론 나는 집에서 하게 되었다. 나와 그녀... 똑 같이 집에서 목욕을 해 왔지만 그녀의 눈물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당뇨로 고생을 하고 있는 그녀지만 언제나 웃으며 살아간다. 아마 그녀는 내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자그마한 보따리를 챙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 나설 것이다. 어쩌면 전화를 해 올지도 모르겠다. 이 지역에 이런 사람이 있는데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그런 전화가 오면 명쾌한 대답을 해 주어야지. "당연히 방법이 있지요 한 번 방문해 봅시다."라고...
200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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