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비와 함께 다 지나버린 것 같다. 며칠 전 많이 내린 비에 피해는 입지 않았는가 전화를 했더니, 산기슭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큰 탈은 없었다고 하신다. 산에 나무가 없었더라면 춘천 나눔의 동산에도 어김없이 대형 사고로 연결 되었을 텐데 평소 산림녹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번 비의 피해를 보고 알 수 있었다. 평소 고기를 자주 먹어 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라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를 격려해 준다. 갈비를 맛있는 양념에 재우는 아내의 손길을 그들이 얼마나 느끼겠는가만, 누구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봉사가 아니라는 것을 자주 강조하는 우리들이기에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는 부모를 보고 아들이 한마디한다. "아빠 오늘도 봉사 가요?" "그래~ 너도 함께 가자." 나는 아이를 봉사에 자주 데리고 다닌다. 학교에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봉사에 부지런히 데리고 다닌다.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것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이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삼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리라는 것, 부모가 물려 줄 수 있는 것은 비록 부족하지만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라는 생각에,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자 재빨리 차에 타더니 뒷자리에 가서 눕고 잠을 잔다. 이젠 숙달된 것 같다.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측은하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착한 아빠다.
친구와 함께 4명이 춘천 나눔의 동산에 도착했다. 숙달된 솜씨들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일부는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 밥이 되고 국이 끓여지고, 반찬을 다 만들었을 무렵 갈비도 맛있게 구워졌다. 상이 차려지고 기도를 해주니 맛있게 식사를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천의 벽이 무너져 있다. 워낙 많은 비가 내려서 하천의 옹벽이 견디지 못했던가 보다. 위험하게 방치되어 있는 곳을 빨리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면사무소에서 와서 해 주기로 했단다. 빨리 공사를 해 주면 좋을 텐데...
할머님들이 많이 살고 있는 춘천 나눔의 동산, 이제는 하늘 나라에 갈 소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평안하게 보인다. 몸이 불편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말씀도 전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아픈 사연도 듣게 된다. 아직 나이가 어린 여자 장애인의 종아리가 다 텄다. 마치 아기를 낳은 산모의 다리가 트듯이 말이다. 이상하여 사연을 들어 보니, 13살 때 누군가가 폭행을 했던가 보다.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정신지체 장애인 아이는 그렇게 해서 14살 때 아이 엄마가 된다. 다른 보호소에서 보호를 받다가 건강이 회복되고,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지면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2년 만에 또 임신을 해서 보호소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가 나눔의 동산으로 오게 되었는가 보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 벙글이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성 장애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남자지만 창피했다.
다시 시설을 고치는 이야기와 장애인 시설을 정부에서 정한 테두리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열악한 장애인 시설들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할 것인 가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 장애인이 내게로 와서 잘려지고 뭉개져 있는 내 오른손과, 반토막만 있는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더니 "손가락이 빨리 컸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도해 줄게요.."라고 말한다. 순수한 그 마음을 발견하곤 마음이 참 훈훈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과연 그녀는 지금 행복할까?"라는 물음표가 찍히고 있었다.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행복해야 하는데...
어느새 설거지와 이것저것 일할 것들이 끝났는가 보다. 다시 다음달을 기약하며 차에 타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행복이란... 마음의 평안에서부터 오는 것 일진데....
부천에서 나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는 부모를 보고 아들이 한마디한다. "아빠 오늘도 봉사 가요?" "그래~ 너도 함께 가자." 나는 아이를 봉사에 자주 데리고 다닌다. 학교에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봉사에 부지런히 데리고 다닌다.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것이 어릴 적부터 몸에 배이게 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삼기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리라는 것, 부모가 물려 줄 수 있는 것은 비록 부족하지만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라는 생각에,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자 재빨리 차에 타더니 뒷자리에 가서 눕고 잠을 잔다. 이젠 숙달된 것 같다.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측은하다는 생각도 드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착한 아빠다.
친구와 함께 4명이 춘천 나눔의 동산에 도착했다. 숙달된 솜씨들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일부는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다. 밥이 되고 국이 끓여지고, 반찬을 다 만들었을 무렵 갈비도 맛있게 구워졌다. 상이 차려지고 기도를 해주니 맛있게 식사를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천의 벽이 무너져 있다. 워낙 많은 비가 내려서 하천의 옹벽이 견디지 못했던가 보다. 위험하게 방치되어 있는 곳을 빨리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면사무소에서 와서 해 주기로 했단다. 빨리 공사를 해 주면 좋을 텐데...
할머님들이 많이 살고 있는 춘천 나눔의 동산, 이제는 하늘 나라에 갈 소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평안하게 보인다. 몸이 불편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말씀도 전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아픈 사연도 듣게 된다. 아직 나이가 어린 여자 장애인의 종아리가 다 텄다. 마치 아기를 낳은 산모의 다리가 트듯이 말이다. 이상하여 사연을 들어 보니, 13살 때 누군가가 폭행을 했던가 보다.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정신지체 장애인 아이는 그렇게 해서 14살 때 아이 엄마가 된다. 다른 보호소에서 보호를 받다가 건강이 회복되고, 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지면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지만, 2년 만에 또 임신을 해서 보호소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가 나눔의 동산으로 오게 되었는가 보다.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 벙글이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여성 장애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남자지만 창피했다.
다시 시설을 고치는 이야기와 장애인 시설을 정부에서 정한 테두리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열악한 장애인 시설들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할 것인 가로 토론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 장애인이 내게로 와서 잘려지고 뭉개져 있는 내 오른손과, 반토막만 있는 내 왼손 새끼손가락을 보더니 "손가락이 빨리 컸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도해 줄게요.."라고 말한다. 순수한 그 마음을 발견하곤 마음이 참 훈훈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과연 그녀는 지금 행복할까?"라는 물음표가 찍히고 있었다. 어떤 경우가 오더라도 행복해야 하는데...
어느새 설거지와 이것저것 일할 것들이 끝났는가 보다. 다시 다음달을 기약하며 차에 타지만 마음은 복잡했다. 행복이란... 마음의 평안에서부터 오는 것 일진데....
부천에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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