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문학의 이해

목적격조사 '을/를'의 중첩

자오나눔 2007. 1. 17. 15:04
글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조사 가운데 하나가 목적격 조사 ‘을(를)’이다. 단일 문장에서도 ‘을(를)’은 여러 번 나올 수 있는데, 형식에 맞게 쓰이면 자연스럽지만 어설프게 중복되면 비문은 아니더라도 글의 흐름이 끊어져 매우 불안정하다.

다음의 경우는 ‘을(를)’의 중복이 자연스런 예다.

가) 철수는 공부를 하고 영희는 피아노를 친다.
나) 어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돌보아야 한다.
다) 나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선물을 보냈다.
라) 인간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

가)는 대등절로 이어진 문장이다. 나)는 연결어미 ‘하고’로써 두 개의 서술구를 이은 문장이고 다)와 라)는 각각 관형구, 부사구가 삽입된 문장이다. 이와 같은 예에서는 ‘을(를)’의 중복이 당연한 현상이며 하등 어색할 것이 없다.

그러나 다음의 예는 이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마) 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이유로 표창했다.

마)는 목적어 ‘학생을’과 서술어 ‘표창했다’ 사이에 삽입구가 놓이면서 그 삽입구에도 조사 ‘을’이 들어갔다. 일단, 목적어와 서술어는 서로 붙어 다녀야 숨이 살아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중간에 삽입구가 놓이더라도 같은 목적격조사를 연이어 넣는 것은 좋지 않다. 이 문장은 다음의 두 가지로 고쳐볼 수 있다.

마-1) 학교에서는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이유로 그 학생을 표창했다.

마-2) 학교에서는 그 학생에게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이유로 표창장을 수여했다.

마-3) 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했다는 이유로 표창했다.

마-1)은 ‘을’의 연이음을 해소하기 위해 성분의 위치를 약간 변화시켰다. 마-3)은 목적어 ‘학생을’을 ‘학생에게’로 바꾸어 ‘을’의 중복을 피한 것이다. 마-4)는 목적어와 술어가 서로 떨어져 있음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목적어 뒤에 쉼표를 넣은 것이다.

다음의 예는 두 목적어가 포함관계에 있다. 포함관계란 뒤의 목적어가 앞의 목적어의 수량을 나타내거나, 그것의 한 부분 또는 한 종류를 나타내는 관계를 말한다. 이때는 특히 두 목적어가 하나의 서술어를 공유는데, 이같은 점에서 조사 ‘를’의 중첩은 글의 자연스런 흐름을 막는다..

바) 어머니께서 나에게 용돈을 천 원을 주셨다.
아) 순이가 철수를 손을 잡았다.

이같이 목적어가 포함관계에 있는 글에서는 중첩된 목적격조사 중 앞에 나오는 것을 생략할 수 있다. 위의 예문들은 생략의 효과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고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바-1) 어머니께서 나에게 용돈 천 원을 주셨다.
아-1) 순이가 철수 손을 잡았다.
아-2) 순이가 철수의 손을 잡았다.

한편, 동작성을 지닌 명사에 접미사 ‘하다’를 붙이면 동사가 된다. ‘싸움+하다’, ‘칭찬+하다’, ‘적용+하다’, ‘사랑+하다’ 등이 그같은 예이다. 이같은 명사는 목적격조사 ‘을’을 넣어 ‘칭찬을 하다’, ‘적용을 하다’, 사랑을 하다‘ 등으로 할 수도 있다. 이 때 앞에 목적어가 있음에도 서술어를 이같이 목적어+하다’의 형태로 만들어 ‘를’의 중복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예1) 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표창을 했다.
예2) 사회 현상을 올바르게 평가를 해야 한다.
예3) 모든 사회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과 사회 집단들이 서로 밀접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발전을 해 나간다.(고교 사회·문화 교과서)

이럴 때는 서술어를 목적어가 들어간 구 형태로 만들지 않고 동사형으로 쓰는 게 중복을 피하는 요령이다.

예1-1) 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표창했다.
예2-1) 사회 현상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
예3-1) 모든 사회는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과 사회 집단들이 서로 밀접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발전해 나간다.


두 목적어가 하나의 서술어를 공유하는 문장에서 목적격 조사를 생략할 수 없는 예도 있다. 다음의 예문을 보자.

【예문】
당이론에 밝고, 말재주가 뛰어난 그를 나이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언제까지나 연락병을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조정래,태백산맥,9-p23)

본문에서 필요한 줄기만 모아 보면 ‘그를 연락병을 시킬 수는 없다.’가 된다. 이 때는 겹친 ‘을(를)’ 중 하나를 생략할 수 없으면서도 그대로 두면 문장의 흐름이 막히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는 중복을 피해 문장의 틀을 바꾸어 주는 게 좋다. 아래의 고침 문장들이 그같은 예이다.

고침1)
당이론에 밝고, 말재주가 뛰어난 그를 나이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언제까지나 연락병만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고침2)
당이론에 밝고, 말재주가 뛰어난 그를 나이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언제까지나 연락병 자리에만 박아둘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고침1)에서는 목적격조사 ‘을’ 이 필요한 자리에 보조사 ‘만’을 넣었다. ‘만’은 여러 격에 두루 쓰이는데, 여기서는 ‘을’이 놓일 자리에 들어가 목적격을 띤다. 그러나 이렇게 고쳤어도 두 개의 목적어가 하나의 술어를 갖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어딘가 맥이 끊기는 것같다는 감이 든다. 고침2)는 그같은 점을 해소하기 위해 목적어를 하나만 두고 다른 하나는 다른 성분으로 바꾼 것이다. 고침1)에 비해 고침2)가 더 자연스럽다.

이밖에 방향이나 처소를 나타내는 부사격조사 ‘에게’ 대신 목적격조사 ‘을’을 사용하면서 ‘을’의 중복을 초래하는 예가 있다. 이 경우도 제 기능을 가진 조사를 넣는 것이 음운의 흐름에 맞는다고 하겠다. 아래의 예가 그같은 문장이다.

자) 그가 나를 더 좋은 것을 주었다.
자-1) 그가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