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문학의 이해

단어의 중첩과 생략(상)

자오나눔 2007. 1. 17. 15:07
글을 쓰다 보면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가 두 번 이상 들어가는 수가 있다. 특히 이어진 문장(중문)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보이며, 이때 겹친 단어 중 하나는 군더더기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하나를 생략하는 수가 있는데, 생략해서 문장이 깔끔해진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그로 인해 구문의 체계가 무너진다면 문장의 생명력을 잃게 되고 만다.

단어의 중첩과 생략은 어떤 기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생략하지 않으면 글답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중첩하지 않으면 글이 안 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생략과 중첩이 모두 허용되기도 한다. 예문을 통해 이와 같은 여러 상황을 진단해 본다.

1. 격이 같은 단어의 중첩과 생략

1-1) 나는 나라를 아낀다.
1-2)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
→1-3) 나는 나라를 아끼고 사랑한다.

예문 1-1)과 1-2)은 똑같이 ‘주어-목적어-술어’의 구조를 띠고 있다. 구조가 같은 두 개 이상의 문장을 하나로 연결할 때는 일반적으로 겹치는 부분의 한 쪽을 생략할 수 있다.

여기서는 중첩된 주어 ‘나는’과 목적어 ‘나라를’을 하나씩 생략해 1-3)처럼 간략히 했다.

그러나 다음은 1-1), 1-2)와 비슷한 구문이지만 같은 방식으로 생략할 수 없다.

2-1)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
2-2)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다.

→2-3)? 나는 나라를 사랑하므로 ( )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다.

→2-4)? 나는 나라를 사랑하므로 ( ) 목숨을 바칠 생각이다.

→2-5) 나는 나라를 사랑하므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다.

‘나라를’을 하나 생략하여 중첩을 피하고 보니 2-3)은 비문이고, 2-4)는 합치기 전의 글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 경우에는 2-5)처럼 중첩시켜야 바른 문장이 되고 뜻도 제대로 전달된다.

그 이유는 결합하기 전의 두 문장이 서로 다른 구조이기 때문이다. 2-1)은 ‘주어-목적어-술어’의 형태이고, 2-2)는 ‘주어+부사구+목적어+술어’의 형태이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문장이 다 같이 ‘나는 나라를’로 시작되지만 ‘나라를’의 기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1)의 그것은 문장 전체의 목적어이고, 2-2)의 그것은 부사어 ‘위해’를 한정하는 소단위 목적어이다. 2-2)의 전체 목적어는 ‘목숨을’이다.

이처럼 한 문장 안에 같은 단어가 중첩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의 문장내 기능이 서로 다르면 한쪽을 쉽게 생략할 수 없다.

실례를 들어보자. 아래 예문은 최근의 신문 기사이며, 특히 검찰 관련 기사에서 이같은 유형이 많이 보인다. 간결성을 추구하기 위해 생략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만, 아직까지 우리말 문법은 그런 변명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검중수부는 10일 김홍업씨가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22억원에 대한 증여세 5억8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를 새롭게 밝혀내고 이날자로 구속기소했다.

→◇대검중수부는 10일 김홍업씨가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22억원에 대한 증여세 5억8000여만원을 포탈한 혐의를 새롭게 밝혀내고 이날자로 김(홍업)씨를 구속기소했다.

문장내 기능이 서로 같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를 생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 예를 보자.

3-1) 문화는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 이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무형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는’은 ‘문화는’을 대신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동일 주어를 겹친 꼴이 된다. 이중 하나를 생략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보자.

3-2) 문화는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니, ( )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무형자산이다.

괄호 안에 주어가 빠지고 보니 매우 어색하다. 그 이유를 알아 보기 위해 본문을 두 문장으로 나누어 본다.

3-3) 문화는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3-4) 문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고의 무형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3-3)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된 설명이고, 3-4)는 3-3)의 내용을 귀납적으로 결론짓는 말이다. 이처럼 문장 형식이 같고 그들에 공통으로 쓰인 단어의 격이 같다 하더라도 내용이 판이하면 두 문장을 합칠 때 동일어를 생략할 수 없다.

이밖에, 문장 내에서 특정 단어를 강조하고자 할 때, 생략하기보다는 중첩 사용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4-1) 여러분은 젊음이 있습니다. 젊기 때문에 미래가 있고, 젊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젊기 때문에 조국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습니다.

4-2) 여러분은 젊음이 있습니다. 젊기 때문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고 조국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습니다.

4-3) 여러분은 젊음이 있습니다. 젊기 때문에 미래가, 희망이, 조국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습니다.

4-4) 여러분은 젊음이 있습니다. 젊기 때문에 미래와, 희망이 있으며, 조국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 예문은 모두 쓸 수 있다. 이 중 4-3)은 서술어의 중복까지 피하고자 했는데, ‘미래가’ ‘희망이’와 ‘조국을 위해 희생할 용기가’의 구조가 달라 어색한 감이 있다. 그 어색함을 피하려면 4-4)처럼 ‘있읍니다’를 중첩시켜야 한다.

대등절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대구가 성립하지 않을 때는 동일어를 생략할 수 없다.

5) 당시 인질 구출작전에서는 인질 가운데 페루대법원 판사 1명, 진압 병력 2명, 그리고 인질범 14명이 사망했다.

1997년 4월 23일 페루 일본대사관에 억류된 인질을 구출하면서 발생한 인명 손실 내용이다. 죽은 사람은 인질로 잡힌 페루 대법원판사 1명과 구출 작전에 투입된 병력 2명, 그리고 현장의 인질범 14명이다. 그러나 본문 내용을 보면 마치 진압 병력이 인질 가운데 포함된 것처럼 느껴진다 . 즉 ‘인질 가운데 페루대법원 판사 1명과 진압병력 2명이 사망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대등한 구나 절을 매개하는 반점(,)이 문장을 대구로 인식케 하는 경향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의미상 대구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술어를 생략할 수 없다. 즉 다음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

5-1) 당시 인질구출작전에서는 인질 가운데 페루대법원 판사 1명이 사망하고, 진압 병력 2명과 인질범 14명도 함께 사망했다.

단어를 중첩시킴으로써 운율의 맛을 더하는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구 문장이라도 동일어를 생략하지 않는 것이 낫다.

6-1)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없고, 노력해 보지 않은 사람은 노력의 의미를 알 수 없다.

6-2)? 사랑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노력의 의미를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