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외식이라도 한번 하자고 해야지

자오나눔 2007. 1. 26. 02:12

       요즘 내가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확실한가 보다. 오래전부터 내 책상위에 작은 쇼핑백이 놓여 있었는데 한 번도 무엇인가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열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런데 오늘은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고 열어보니 안경 케이스 비슷한 것과 메모장과 편지와 잉크가 들어있었다. 케이스를 열어보니 만년필이 들어있었다. 편지 내용을 보니 딸내미가 어버이날이라고 선물을 한 것 같았다. 아내에게 사연을 들어 보니 우리 부부가 수술하고 투병 생활을 했고, 장인이 소천 되시고, 우리 부부의 모습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내가 신대원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작은 선물이라도 해 드리고 싶었단다. 그래서 많은 생각 끝에 만년필을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평소 습작을 자주하는 내 모습을 보아왔기에 만년필을 선택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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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부모님께…….
요새 힘든 일도 겪으시고(두 분 다) 건강이 안 좋으셔서 걱정이 됩니다.
가까이서 항상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늘 강하시고 명쾌하시던 모습도 세월을 무시 못 하나 봅니다.
다시 한 번 가족과 부모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신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리고…….
부족한 딸…….
어버이날을 핑계 삼아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2006. 5. 7
딸 두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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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들이 한번 가기도 힘들어하는 장가를 두 번이나 갔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고, 가난한 장애인과 살기 싫어 첫 여자는 14개월 된 아들을 놀이방에 맡기고 나는 병실에 두고 가게를 팔아 우리 곁을 떠나갔었다. 가정은 당연하다는 듯이 산산조각 났었다. 나는 그 후로 예수를 영접하였고 나눔의 사역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소록도 봉사를 다니다가 지금은 아내를 만나서 결혼 했는데, 아내에게는 고등학교 다니던 딸이 있었고 나에게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이 있었다.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들어서면 소록도 봉사를 다니며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니 자연유산이 되곤 했다. 이렇게 두 번이나 유산을 하자 있는 아이들이나 바로 키우자고 더 이상 아이는 바라지 않았다.

       그 당시 결혼을 반대했던 딸은 이젠 2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더 하겠다는 의견을 보이기도 하는 딸이다. 엄마 아빠랑 살면 직장까지 교통이 불편하여 전철역이 가깝게 있는 곳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며 살고 있다. 가끔씩 집에 오면 준열이 공부를 봐 주느라 분주한 녀석이기도 하다. 26살이니 적당한 남자 만나서 결혼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이뤄야할 꿈이 많은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메모 비슷한 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쇼핑백에 넣어서 내게 보내왔었는데 그것을 이제야 읽었고, 선물도 이제야 펼쳐 보았으니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녀석이 서운했겠다. 전화라도 해서 외식이라도 한번 하자고 해야겠다.
       2006. 6. 18
       -나눔(양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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