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잠결에 낭랑한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 불교 사원에서 마을 쪽으로 스피커를 돌려놓고 독경을 하고 있는 소리였다. 잠시 기도하다 다시 잠을 청한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하니 날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배가 살살 아프다. 자는 동영이를 깨우니 깊이 잠들었다. 2층 양변기를 향해 올라가는 길이 천릿길이다. 결국 2층에 거의 올라가 옷에 싸버린다. 화장실에 들어가 처리를 하고 시원하게 일까지 보고 내려온다. 왠지 불안하다. 그때부터 2층 화장실을 아홉 번이나 올라 다닌다. 새벽이슬님이 빨래를 해결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아침 큐티를 마치고 사용하지 않는 의자를 이용해 간이 양변기를 만들기로 했다. ‘어제 밤에 미리 만들어 놓을 걸……. 필요한 사람은 나인데 내가 직접 나설걸…….’ 하는 생각이 든다. 2층까지 올라가지 않으니 숨을 쉴 것 같다. 아침을 차렸는데 나는 굶식이다.
식사를 마치고 찬양학교에 간다고 한다. 이곳은 3년 전에 우리 장모님이 만 달러를 기부하셔서 선교사님은 7천여 평의 땅을 마련하고 대나무를 이용해 찬양학교와 어린이집, 기도굴, 식당까지 만들어 놓으시고 24명의 청년들과 20여명의 아이들을 돌보며 찬양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 계신 곳이다. ‘열나는데 장사 없고, 설사에 장사 없고, 땀나는데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차에 오르기 전에 기도를 한다. “하나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만이라도 설사를 막아 주소서.”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그냥 숙소에 있어도 될 텐데 끝까지 함께하려는 미련한 짓을 또 하고 있다. 이동 중에 호텔에 들려 방을 잡아 놓고 떠난다. 찬양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오주여! 쪼그려 앉아서 일을 보아야 한다. 급하니 한쪽다리로 버티며 일을 본다. 몇 번 다니다 보니 다리가 풀려 왼쪽 다리를 땅에 디뎌 버렸다. 비명이 터지고 식은땀이 나오고 죽을 맛이다. 오후 일정이 길어진다. 너무나 힘들어 철수하자고 했더니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신다. 양곤 신학교를 찾았다. 컴컴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단다. 그 안에서 찬양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기를 격일로 공급을 해 준단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부를 하는 청년들, 이들이 있기에 미얀마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원주민 목사님인 무민옹 목사님 댁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바지에는 배설의 잔해들이 묻어 있는데 속이 상하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이렇게 36번을 하고 나니 탈진이다. 프론트에 전화하여 몇 가지 불편사항을 말하고 나니 바로 목사님과 동영이가 들어온다. 화장실에 물이 안 빠져 생쇼를 했던 이야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는다. 목사님들은 2층에 우린 4층에 방이 잡혀 있었다. 호텔서 햇반에 뜨거운 물을 부어 죽으로 만든 다음에 고추장과 고추참치에 곁들여 먹었다. 바로 화장실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