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소록도] 사랑할 대상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자오나눔 2007. 1. 26. 10:11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인하여 자신도 모를 새로운 힘을 얻으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록도라는 섬을 참 사랑합니다. 아니 그 섬 안에서 한센병자라는 이름으로 살고계시는 어른들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소록도에 봉사를 갈 때면 마치 명절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그렇게 소록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서 1년에 네 번씩은 반드시 봉사를 갔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첫날도 소록도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해 첫날이 주일이고 이런 저런 준비가 부족하여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미루면 미룰수록 마음이 답답합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봐야하는데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상의를 했습니다. 1월이 다 가기 전에 소록도에 내려갔다 오자고 말입니다. 마침 강장로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혈관이 막혀 손이 썩어 들어가니까 오른쪽 팔까지 절단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친하게 지내던 집사님까지 건강이 악화되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에 겸사겸사 내려가기로 합니다. 급하게 잡은 일정이라 많은 분들과 내려갈 수 없습니다. 아내와 아들, 손 선생, 최은경 자매, 이렇게 다섯 명이 내려갑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부지런히 달려갑니다. 소록도 가는 길이 왕복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항상 참 가깝다는 생각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척 멀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내려가기 때문인가 봅니다. 뒷자리에 탄 일행은 새벽잠에 취해 있습니다. 운전석에는 아내가 앉아있고, 조수석엔 제가 앉아있습니다. 봉사를 갈 때 항상 이렇게 앉아서 갑니다. 아내 덕분에 편하게 봉사 인솔하여 다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안개가 도로를 덮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3시간 정도 달려 내려가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안개낀 고속도로라는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 노래도 모두 잊어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녹동에 있는 현대병원에 들렸습니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아직 멀었습니다. 마음은 바쁩니다. 간호사께 제 명함을 드리며 멀리서 급하게 내려왔다가 다른 일정 때문에 바로 가야 하는데 협조를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허락을 해 주시네요. 건강하시던 분의 얼굴이 반쪽입니다. 코에는 산소를 끼우고, 오른쪽 팔은 잘려져 있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겉으로 건강하게 보인다고 모두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살려달라고……. 이분 살려달라고……. 단지 살려달라는 기도밖에 할 수 없네요. 눈물을 훔치며 돌아 나옵니다. 다음에 내려 올 때는 사람이라도 알아 봤으면 좋겠습니다.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로 들어갑니다. 한쪽에서는 육지와 소록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다리가 완공되면 배 시간을 맞춰야하는 불편함은 없어질 것 같습니다. 제 고향 청산도에도 육지와 다리가 놔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불어도 언제든지 고향에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소록도에 도착하여 화장장이 가깝게 있는 구북리로 차를 달립니다. 핸드폰 안테나가 없어지네요. 핸드폰 통화이탈 지역입니다. 갑자기 답답해집니다. 없었을 때도 불편함 모르고 살았었는데 말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한 지역에서 통신회사에 전화를 하여 불편신고를 해 놓았습니다. 사슴이 뛰어 놀던 텃밭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전히 새벽이면 사슴들은 마을까지 내려와 사람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겠지요. 교회에 들려 마련해간 떡을 내려놓습니다. 마을 분들이 골고루 나눠 잡수실 것입니다. 마련해간 작은 성의도 봉투에 담아 드립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것이 참 많습니다. 마주 잡은 조막손들이 살갑습니다. 제 오른손도 사고로 조막손이 되어 있는데 소록도 어르신들의 손도 제 손하고 비슷합니다. 마주 잡은 손이 엉성해도 뜨거운 정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일치기로 내려온 일정이라 마음이 바쁩니다. 마을에 들어갑니다. 만나는 어른신들의 인사가 정답습니다. 마냥 반갑기만 합니다. 이 집사님 댁으로 갔습니다. 힘들어 하는 이 집사님을 위해 작은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힘내시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 부르는 찬송에 눈물을 만나고 새로운 희망을 만납니다. 여전히 조용한 섬 소록도. 이곳저곳 돌아 볼 곳도 많고 만나야 할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다 만나지 못합니다. 하룻밤 쯤 자고 갔으면 좋겠다는 고백이 듣기 좋습니다. 그러나 일정이 허락지 않습니다. 만나는 소록도 어르신들의 반가운 인사가 감사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깊은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삶이 허락하는 순간까지는 사랑해야 할 섬, 소록도입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다시 SK텔레콤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소록도 구북리 마을 주민이 핸드폰 사용을 많이 안하는 것은 핸드폰 통화가 안 되니 있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일 찾아오는 봉사자들 중에 핸드폰 사용자는 불편을 겪고 있다며 통화가 되도록 협조해 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소록도는 특수 지역인데 사회봉사 차원에서라도 부탁드린다며 몇 번이고 다짐을 받습니다. 아마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새벽에 내려갈 때는 안개가 가득하더니 돌아오는 시간은 칠흑처럼 어두운 밤입니다. 불빛이 유난히 감사한 밤입니다. 어느새 뒷좌석에는 가늘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내에게 한마디 합니다. 운전 초보이지만 진심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여보 힘들면 내가 운전할까?” 대답 대신 페달을 더 밟는 아내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2006. 1. 17
‘봉사는 중독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