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명절은 무척 바쁘게 보냈습니다. 도로가 막힐 것을 대비하여 조금 일찍 고향에 내려갔는데, 까치설날 밤에 소록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병상에 누워계시던 강대시 장로님이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고향이 섬이라 배시간이 맞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기에 하룻밤을 고향에서 보냅니다. 설날 아침에 작은아버님과 작은어머님께 세배를 드립니다. 친부모님은 오래전에 하늘나라에 가셨기에, 명절 때면 언제나 고향을 지키고 있는 작은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을 찾아뵙습니다. 덕담이 오가고 떡국을 먹은 후에 마음에 있는 작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립니다. 신정 때도 주일이었고, 구정 때도 주일이었습니다. 시골 교회에는 몇 분 안 되는 교인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외부 손님이 오면 더 반가워하시는 어르신들입니다.
차를 달려 부두에 나가보니 1분전에 여객선이 떠났습니다. 다시 2시간을 기다려야합니다. 덕분에 몇 가지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여객선이 오고 바다 위를 달리는 여객선에서 바다위에 떠 있는 섬들을 봅니다. 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기다려주고 있습니다. 육지에 도착해 다시 차를 달립니다. 3시간을 달려 녹동항에 도착하니 여객선 운항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리저리 연락하여 우리 차는 녹동항에 주차해 놓고 사선을 타고 소록도로 들어갑니다. 이용화 집사님이 선착장에 마중을 나와 계십니다. 이 집사님 차로 이동을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꽃으로 단장을 하고 손님도 받던데, 강장로님은 그 흔한 영정 한 장이 없었는지 안방에 관만 덩그러니 누워있었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천으로 관이 덮여 있었습니다. 그 십자가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힙니다. 먹먹합니다. 좁은 거실에 소록도 어르신 몇 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박대철 목사님도 조금 전에 도착하셨는가 봅니다. 댁에 사는 아드님도 방금 도착하였다고 하네요. 아직도 며늘아기는 장로님이 한센병자라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들이라고 떳떳하게 소록도에 올 수가 없었겠지요. “내가 죽어도 찾아오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유언하신다는 소록도 어르신들의 자식 사랑이 가슴 아픕니다. 부모가 한센병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자식들의 가정이 깨질까봐 그러신다는 말씀을 듣고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미망인이 되신 오권사님은 우리가족이 도착하니 무척 반가운가 봅니다. 기운 없어 하던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설날이라 상갓집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인지, 소록도 특성상 몸이 불편하신 분이 많아 함께 하는 분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소록도 한센인 자치회장을 맡으며 참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인데 마지막 가는 길에는 배웅자도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또 웬 조화랍니까. 장례절차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꽃상여를 주문해 놨다고 하네요. 정월 초하룻날에 장례를 치르는데 화장을 하여 아드님이 유골을 가져가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밤길을 6시간 달려 올라가 남은 일정을 소화시켜야 하기에 일어서야 합니다. 아내는 준비해 간, 작은 금액을 오권사님께 전해 드리며 필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합니다. 고인이 대출받은 것이 있는데 오권사님이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법원에 가서 상속포기 신청을 하시라고 알려 드립니다. 배웅을 받으며 장로님 집을 나와 홍집사님 댁에 잠시 들립니다. 아들과 함께 세배를 드립니다.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누다 다시 일어섭니다. 밤길을 부지런히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착장에 나와 도착해 있는 사선을 타고 육지로 나옵니다. 부지런히 차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새벽입니다. 이젠 밤길 운전도 제법 하기에 아내가 힘들 때 운전 교대를 해 주니 좋은가 봅니다. 설 명절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모두 복 받은 것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2006. 2.1 -나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