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땅콩박사를 읽어가면서 내 머릿속에는 오래전에 보았던 드라마가 떠올랐다. 알렉스 하비의 뿌리를 드라마로 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방송했던 드라마이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쿤타킨테였는데, 땅콩박사를 읽어가면서 조지카버의 모습에서 쿤타킨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조지카버라는 말이다.
우리말에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가면 갈수록 더욱 답답하거나 안 좋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지카버의 상황은 산 넘어 산이 아니라 끝없는 죽음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좌절하여 낙망하지 않고 하늘을 버티는 거목처럼 살아온 카버 박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이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요, 건널 수 없는 강이었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산은 넘었고, 강은 건너 있음을 경험한 기억들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땅콩박사를 읽으며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간섭하시고 개입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경험을 중요시 여긴다.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말을 해도 자기의 경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낙후된 민족들이다. 가난하게 살 때면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한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에 새로운 것이 맞는다고 할지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은 항상 같은 작물을 몇 년씩 그 자리에 심지 않으셨다. 서로 엇갈아 가면서 작물을 심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이 새롭게 터득한 것이 아니라 조상 때부터 해 오던 방법대로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새로운 작물이 들어왔다고 해도 누가 성공했다는 소문을 듣기 전에는 그 작물을 심지 않았던 시골 농군들이 생각난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는 두려움이 있었던 그 시절이 지금 땅콩박사의 동족들에게서 펼쳐지고 있는데…….
- 줄거리
조지 워싱턴 카버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다. 흑인 노예 소년이었기에 제대로 공부를 못한 그는 주인집 백인 아들이 공부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그 뒤에 그는 대학까지 들어가 식물학을 전공했다.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 좋은 자리에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흑인 농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배운 농학으로 어떻게 이웃을 도울 것인가'하는 기도 제목과 함께 열심히 연구했다. 그러던 차에 땅콩을 새로 개발하게 되었다. 땅콩 품종을 개발해서 농가에다 보급을 했다.
카버박사는 자기 말을 듣고 땅콩 농사한 농민들이 아주 어려운 지경에 빠지자,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너무 답답해서 땅콩을 한주먹 쥐고 연구실에서 나와서 밤하늘이 펼쳐있는 들로 나갔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가슴 뭉클하다.
"여호와 아버지, 이 아름다운 우주는 왜 지으셨습니까?"
"질문이 너무 크다. 너에게 어울리는 질문을 해라."
"하나님, 그러면 사람을 왜 지으셨습니까?"
"그 질문도 너무 크다. 내가 사람을 지었는데! 네가 뭔 그런 소릴 하느냐? 너에게 맞는 질문을 해라!"
"하나님, 그러면 이 땅콩은 왜 지으셨습니까?"
"그 땅콩을 가지고 연구실로 들어가라."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의원들이 어디서 그 모든 것을 배웠느냐고 질문을 하자 성경책에서 배웠노라고 대답을 한다. 성경은 만물을 다 이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창세기 첫 장에는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이것이 너희 식물이 되라.” 기록되어 있다고 대답을 한다.
- 나가는 말
왜 조지카버 박사는 하나님의 간섭과 사랑을 그렇게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점을 가져 보았다. 그것은 넘어져도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넘어지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았기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 일이 잘 풀리면 내가 잘나서, 내가 잘해서, 내 능력이 좋아서라며 자기에게 공을 돌리지만, 일이 안 풀리고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 그럴싸한 핑계를 대서 하나님의 실수로 치부해 버리는 믿음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가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왜?’라는 질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유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음표였다. 물음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어려운 처지에 살고 있는 자기 동족을 위해 수고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발견했다면 너무 비약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동학교를 만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필요한 곳까지 이동을 하여 자기 지식을 가르쳐 주는 그 모습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아골골짝 빈들이라도 달려가야 마땅할 터인데 따지는 것이 너무나 많음이 참 부끄럽다. 주님은 가라고 하시는데 나는 내처지 내 형편만 바라볼 때가 너무나 많았음을 기억하며 부끄러워한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하늘을 지탱하는 거목처럼 살아온 카버박사, 자기 동족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간구했던 카버박사, 그 조지카버 박사의 믿음과 좌절하지 않는 소망 신앙을 다시 생각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넘어져도 일어남을, 하나님의 사람은 무너져도 소망으로 살아감을, 하나님의 사람은 등 뒤에서 지켜봐 주시는 주님이 계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의 사람임을…….
2008. 3. 23.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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