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서 사랑의 크기를 논한다면 내리사랑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찌 글로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만, 자식의 절박한 위기 앞에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그런 부모들이니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건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자식이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부모의 바람일 뿐이지 직접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예수를 몰랐던 그 옛날에도 부모들은 알 수 없는 신에게까지 자식의 잘됨을 위해 빌었었다. 물론 어떤 일이 닥쳤을 때만 기도의 대상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가. 예를 들면 수능 때 말이다. 교회나, 성당이나, 절이나, 우상이나, 자기가 믿는 대상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한다고 다 응답받는 것은 아니다. 기도를 들어 줄 수 있는 대상인가? 아니면 기도 후에 기도했으니 들어 줄 것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삼는 대상인가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성부 하나님께 성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기도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도에 동참하시는 장엄한 역사를 상상하며 기도하면 참 멋지다.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비의 심정은 때론 애절하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기도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위해 기도할 때, 밝고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솔로몬의 지혜와 명철을 달라고 기도한다. 요즘은 어려운 이웃과 풍족하게 나누고도 넉넉히 남는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한다. 신기하게도 성적이 엉망인 아이를 위해 공부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고 있다. 분명히 그것도 기도를 해야 할 텐데 자식을 위해 기도할 때 공부 잘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부모는 자식을 평생 A/S 해야 하는 존재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읽은 책, ‘자녀 축복 침상 기도문’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 책 속으로
브니엘 출판사에서 만들고 이대희 목사님이 쓴 책이다. 기도문을 다양한 예를 들어서 정리를 해 놓으셨다. 모두가 주옥같은 기도문이다. 어떻게 정리를 해야 좋을지 난감하여 그중에 한편을 적어 본다.
* 감각이 무디지 않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사랑하는 준열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미각, 후각, 청각, 촉각, 시각 등의 오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각각의 감각 기능이 잘 유지되게 하시고
감각이 살아나 만지고 보고 듣고 먹고 입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어느 한부분이 마비되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어
모든 감각 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활동하도록 도와주소서.
감각 기관을 인간의 즐거움과 육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아름답게 사용하도록 도와주소서.
아픔을 느낄 때마다 이웃의 아픔을 느끼게 하시고
아름다운 물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를 찬양하게 하소서.
음식의 맛을 보면서 그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 이웃에게 감사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영적인 귀까지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나가는 말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어찌 이 기도문이 자녀를 위한 축복 침상 기도문이랴 생각했다. 우선 나부터 해야 할 기도문이었다. 기도문 제목마다 나의 삶과 연관되어 있었고, 나의 현실에 적용해야 할 내용들이었다.
내가 기도로 바로서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나부터 이 기도문을 제대로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이끌림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이 모두 들어 있는 소중한 기도문이었다. 책상위에 두고 수시로 펼쳐 읽어야겠다.
2008. 4. 20.
-양미동(나눔)―
'나와 너, 그리고 > 나눔의 서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평] 영광의 왕과 마주치다 (0) | 2008.05.04 |
---|---|
[서평] 책임의 자유 (0) | 2008.04.29 |
[서평] 크리스천 비즈니스 백서 (0) | 2008.04.14 |
[서평] 땅콩박사를 읽고 (0) | 2008.03.23 |
[스크랩] [서평] 세기의 기도 (0) | 2008.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