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스크랩] 나는 변소다

자오나눔 2009. 8. 18. 05:57

나는 변소다


고속도로 운전을 할 때가 많다. 물론 나눔 사역을 하면서 이동하는 것이지만 도로를 달리며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운치가 있다. 운전을 하다가 용변이 급할 때는 참으로 난감해 진다. 비장애인들이야 앉아쏴를 하든지 쪼그려 쏴를 하던지 상관이 없지만, 다리가 불편한 나 같은 장애인에게 용변은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휴게소라도 만나게 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 듯 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열심히 달려가 휴게소 화장실에 갔을 때 양변기가 아닌 좌변기가 쪼그려 쏴를 하라고 손짓하고 있을 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튼 요즘 휴게소에 있는 화장실은 참으로 근사하게 만들어졌다. 특히 장애인 화장실에는 보호자가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의자가 놓여 있거나 작은 침대가 놓여 있는 곳도 있다. 잔잔한 음악은 기본으로 흘러나온다. 과연 이곳이 용변을 보는 화장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다 유년시절이 떠올랐다. 유년시절의 화장실은 변소였다. 따로 만들어진 작은 집에 커다란 웅덩이 파 놓고 그 위에 널빤지나 굵은 나무를 얹어 놓고 그 위에 쪼그려 쏴 자세로 앉아서 용변을 보는 것이다. 그러다 잘못하여 나무가 미끄러지거나 아래 웅덩이에서 방울들이 튀어 오를 땐 정말 난감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변소에 다녀와 투덜거리는 나에게 아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놈아 변소 없으면 우리는 살지 못해 어디다 쌀 거냐?”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지게지고 밭으로 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정말 깨끗한 요즘 화장실과 참으로 난감했던 유년시절의 변소. 정말로 소중한 장소가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몽골에는 아무 곳에서나 바지를 까 내리고 주저앉아 용변을 보는 여자들이 많다. 그 나라에는 용변에 대해서는 큰 개념이 없는지는 몰라도 옆에 남정네가 서 있어도 용변을 보는 것이 무척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다. 들판에서 말이나 소의 배설물을 쉽게 발견하듯이 사람 사는 곳의 들판에서는 사람의 배설물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6,70년대에는 그렇게 살았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지 않는가. 잠시 이야기가 엉뚱한 쪽으로 흘러갔다.


한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던 주재용 박사의 신앙단상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케냐에 갔을 때 ‘Choo’라는 이니셜이 적혀있는 곳이 자주 눈에 띄더란다. 주박사님의 성이 영문으로 ‘Choo’이기 때문에 주박사님을 환영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케냐말로 ‘나는 변소다’라는 것을 알고 당황을 하셨다면서 이렇게 고백을 하셨다.

“‘나는 변소다’ 내가 변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이겠는가! 모든 사람의 오물을 내가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는 것이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변소로 보내셨다면 내가 변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온갖 더러운 냄새나는 것은 내가 삼키고 다른 사람의 배설물을 내가 받아 내서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될 수 만 있다면 나 하나쯤 변소가 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나님이여, 이 몸을 이 세상의 변소로 사용하소서. 나는 변소입니다.”

이 세상에서 변소가 되고 싶은 사람…. 하나님 앞에 이런 고백을 하고 그 고백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삶일까. 하는 부러움이 앞서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아직 변소는커녕 쓰레받이로도 살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화장실의 변기가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 변소로 사용되더라도 깨지지 않는 변소로 사용하소서. 깨진 변소는 깨진 변기는 주변만 더 더럽힐 뿐입니다. 깨지지 않는 변기, 깨지지 않는 변소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2009. 6. 3.

-양미동(나눔)―

출처 : 자오쉼터
글쓴이 : 나눔(양미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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