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자오쉼터 이야기

[스크랩] 이웃집 김치

자오나눔 2014. 7. 4. 00:33

자오쉼터 아래로 동네 길이 나 있다.

그 길 가로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다.

그래서 옆집서 무슨 반찬을 만드는지도 금방 안다고 할 정도다.

그렇게 모여서 살다보니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인심이 아직도 남아 있는 시골이다.

옹기종기 서로의 일손도 도와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곳.

그래서 살면서 새록새록 정이 들어가는 마을이다.

 

대머리 아저씨는 자오쉼터 텃밭 아래에서 사신다.

아저씨네 텃밭과 자오쉼터 텃밭이 높은 옹벽을 중심으로 나눠져 있다.

작년에 이곳으로 이사와서 정신없을 때 대머리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쫒아 올라 오셨다.

화를 많이 내셨다.

장애인들이 함부로 무엇을 던질테니까 밭 근처에는 못 오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장애인 시설이 들어 오는 것을 좋아했을리가 없다.

알았다며 조심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 때 대머리 아저씨가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로 팔딱 뛰어 건너니까 밭에 돌이 떨어져~"하셨다.

 

며칠 후 우리와는 상관없는 공사를 시작했다.

아랫집에 장애인집사 부부가 살고 있는데 배수로가 망가져서 집사님네 집으로 물이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장마라도 나면 집사님 댁은 물난리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택 아저씨께 일당을 드리며 배수로 공사를 했다.

거프집을 짜서 시멘트와 모래, 잡석을 잘 섞어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했다.

배수로 작업을 하면서 대머리 아저씨네 밭 위에 돌 무더기에도 콘크리트 몇 삽을 부었다.

이젠 대머리 아저씨네 밭으로 돌이 굴러 떨어질 염려가 없다.

동네에 소문이 났다.

'바보 목사가 마을에 이사왔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를 알아 보니 자기 집 일도 아닌데 자기 돈을 들여서 배수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40m 정도의 길이에 높이 50cm, 넓이 50cm의 배수로를 멋지게 만들어 놓으니

동네 어른들이 칭찬하는 소리가 '바보 목사'였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드렸다.

하루에 열번 마주치면 열번을 인사 드렸다.

장애인 삼촌들에게도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며 동네 분들 볼 때마다 인사를 드리게 했다.

굳어 있던 대머리 아저씨네도 얼굴이 풀어졌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권사님은 어르신들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나눴다.

인천 석모도에 있는 해수온천에도 할머니들을 9인승 카니발에 태우고 다녀왔다.

바지락 칼국수도 사 먹으며 정을 쌓아 갔다.

권사님은 만두를 빚어서 이웃들과 나누며 할머니들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만두 속이 너무 많아서 함께 빚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웃들과 정은 점점 깊어 갔다.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질문을 했다.

"목사님은 왜 다른 사람들처럼 교회에 나오라고 하지 않아요?"

내 대답은 이랬다.

"이미 교회에 오셔서 함께 하고 있잖아요. 아직 예배는 때가 안됐을 뿐이지요."

정말 교회에 온 것이 맞다며 깔깔대고 웃으시던 할머니들이다.

 

자오쉼터에 김치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났단다.

작년에 3천포기 김장하여 소록도 한센인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정작 자오쉼터는 김치가 떨어졌다는 말이 마을에 돌았단다.

대머리 아저씨네 아주머님(75살. 그래도 나는 아주머니라 부른다.)이 권사님을 찾아 오셨다.

작년에 담근 김치가 있는데 드릴테니 가져가서 잡수라고 했단다.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 놓았던 김장김치를 네 봉지나 주셨다.

 

그런데...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머리 아저씨네는 동네서 75년을 살면서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것은 한 번도 없었단다.

썩어서 버린적은 있어도 나눈적은 한 번도 없었단다.

동네 어른들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신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감동이 왔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일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은 과일이라도 사서 심방을 가야겠다.

덕분에 어머니의 손 맛같은 김치를 먹고 있다며...

감사하다며...

 

 

 

 

 

출처 : 자오쉼터
글쓴이 : 나눔(양미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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