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이에게

그대 내 좋은이여...14

자오나눔 2007. 1. 11. 01:04

      은행털이 부부처럼

      요즘은 도심의 가로수가 은행나무로 많이 교체 되어 있습니다. 오염된 환경에 적응을 잘하기도 하지만, 은행나무 잎이 약재로 사용도 되고, 해충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라지요? 그래서인지 도심의 가로수들은 거의가 은행나무입니다.

     덕분에 가을이 깊어 가면 은행을 줍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밤늦게  가로수에 열린 은행을 털었다며 즐거워하는 지인의 천진난만함을 만나기도 합니다. 은행을 비닐에 담아 전자렌지에 넣고 1-2분 돌리면 톡톡 튀는 소리와 함께 은행이 몸을 열어  줍니다. 그때 알맹이를 꺼내 먹으면 참 고소합니다. 그대  내 좋은이도 그렇게 한 번 해 보세요. 가을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되어 있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희가 7년째 봉사를 다니고 있는 곳에는  500년된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바람이라도 불어 주면 어른  엄지손톱 만한 은행이 투두둑 떨어지는 장관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떨어진 은행을 주어  깨끗하게 만든 다음 그곳  장애인 공동체를 찾아온 사람들께 선물을 해 주던 모습은 이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며칠전에 일  때문에 도심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길가에 가지런하게  서 있는 제법 굵은  은행나무들이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때 내 눈에  띄는 어느 노부부.  영감님은 짐칸이 있는  자전거에 올라가 장대를 들고 은행나무 가지를 두드리고 계셨고, 할머님은 떨어진 은행을 줍고 계셨습니다. 아마 은행을 주어 포장마차 같은  곳에 파는 분들 같았습니다. 그때, 영감님이 기우뚱하더니 자전거와 함께 인도로 넘어집니다. 길에 누워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시는 영감님을 보며 차가 길가로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야 했습니다. 할머님이 오셔서  영감님을 무릎에 누이고  기도를 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도 주물러 주시고, 어깨도 주물러 주십니다. 한참을 누워 계시던 영감님이 옷을 툭툭 털고 일어 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대 내 좋은이여...
      요즘 며칠 동안 그 노부부의 모습이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영감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인지도... 그대  내 좋은이여, 우리들의 노년도 저리 행복하겠지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함께 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저에게는 행복해  보였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행복한 모습입니다. 그대 내  좋은이도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눈앞에 와 있네요.
      200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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