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이에게

그대 내 좋은이여...27

자오나눔 2007. 1. 11. 01:21
부모님 전상서

며칠 동안 여름 같은 날씨가 지속되더니 하루 밤 낮을 뿌려주는 비로 인하여 다시 봄을 회복한 것 같습니다.
5월의 살랑대는 봄바람과 함께 따사로운 태양이 온 대지를 포근하게 품어주는 날입니다.
저도 이제는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서서히 느껴가는 나이가 되었는가 봅니다.
엊그제 핏덩이로 태어난 준열이가 벌서 중학생이 되어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고, 목소리가 변해가는 것을 보며 대견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합니다.
우리도 늙어 간다는 것은 망각한 체 아이들 커가는 것만 좋아하는 것이 부모인가 봅니다.


어머님 아버님,
아버님이 하늘나라에 가신지 23년, 어머님이 하늘나라에 가신지 16년이 지났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어버이날은 찾아왔습니다.
어버이 날이라고 하지만 제 기억 속엔 어머니날이 더 남아 있답니다.
시골에서 농사와 바다 일을 하시면서 손바닥엔 계곡같이 갈라진 세월의 흔적만 남아 있던 그 모습을 기억합니다.
가끔 내 아이로 마음 상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내 부모님도 나로 인하여 이렇게 가슴 아파 하셨을 거라며 철들은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어제는 텃밭에 고추모종을 심었어요.
부천에서 13년을 살다가 이곳 화성시 마도면에 장애인 시설을 아름답게 건축하고 들어 온지 3년입니다.
감사하게도 동네에서도 인심을 얻어 밭을 2,500평 정도를 무상으로 빌렸습니다.
해마다 그곳에 감자도 심고, 고구마도 심고, 고추도 심고, 각종 푸성귀도 심어 먹습니다.
서투른 농사지만 열심히 지어서 그 수익금은 정말 어려운 교회에 보태고 있어요.
첫해엔 남들보다 늦게 고추를 700포기 심었는데 다른 분들은 너무 늦어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당신의 큰며느리는 농약 통을 짊어지고 농약도 하고, 김도 부지런히 매주곤 했습니다.
뱀이 나온다며 온몸에 백반을 바르다시피 하여 밭에 나가곤 했는데, 첫해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농사를 잘 지었어요.
남편이 뭘 해줄 수 없는 장애인이라 아내가 틈나는 대로 봉사자들의 손을 빌려 하고 있답니다.
작년에는 1,700포기의 고추를 심었다가 우리부부가 급하게 수술을 받느라고 고추 농사를 망쳤더랍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건강을 잃으니 아무것도 못하겠더군요.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던 작년 한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도 일 욕심 많은 아내는 고추를 1,300포기나 심게 합니다.
통신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봉사를 왔어요.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봉사를 오는 친구들인데 저희들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답니다.
마치 내 집안일을 해 주 듯이 정성을 다해주는 친구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체계적으로 농사일을 해보지 않았기에 서투른 솜씨지만 정말 열심히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버섯 집 아저씨가 트랙터로 400여 평의 밭을 갈아엎어 줬어요.
그런데 그날 밤부터 비가 많이 내리는 겁니다.
친구들이 봉사 올 때 고추를 심으려고 했는데 땅이 질퍽이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비가 온 덕분에 땅이 부드러워졌고 일을 하기 참 편하게 되었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고추 1,300포기를 심었어요.
그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청양고추도 250포기나 심었답니다.
밭에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구멍을 내고, 고추 모종을 넣고, 흙을 채워서 꾹꾹 눌러주고, 물까지 충분하게 주었답니다.
풋고추에 살이 통통하게 찌면 봉사 오는 분들에게도 나눠드려야겠어요.
마침 근처에 5일장이 섰기에 일하다 얼른 나가서 수박이며 참외며 호박이며 채소의 묘목도 사다가 심었습니다.
녀석들이 잘 자라서 이웃과 나눠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젠 옥수수랑, 토마토를 몇 그루씩 심어야겠습니다.


며칠 전엔 고향에 다녀왔어요.
모처럼 시간이 났고, 어버이날도 가깝고 해서 겸사겸사 찾아 갔더랍니다.
작은아버님, 작은 어머님이 부모님 산소를 잘 다듬어 놓았더군요.
감사했습니다.
집안 어른이라고는 두 분밖에 안 계시는데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수시로 안부전화라도 드리고 있습니다.


어제는 딸아이로부터 택배가 왔었어요.
오늘이 어버이 날이라며 카네이션 바구니를 보내면서 편지까지 써 보냈더군요.
한번 읽어 드릴게요.

[부모님께…….
사랑합니다.
늘 뒤에서 저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어 주시는 부모님.
이제는 제가 부모님의 버팀목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하세요.
-딸 두리. 올림-]

아내와 결혼하고 처음으로 받아 보는 부모님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빠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딸아이가 이상했던지 준열이가 하는 말,
“누나, 나는 아빠 엄마라고 하는데 누나는 왜 아저씨 엄마라고 해?”
녀석이 한창 예민할 나이인 18살 때 저희가 결혼을 했으니 당연한 일인데 말입니다.
이제는 준열이도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빠가 사고로 중도 장애인이 되고, 가정도 깨지고, 엄마와 누나가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우리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녀석의 가슴에는 왜 친엄마가 14개월 된 자기를 놀이방에 맡기고, 중환자로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를 버리고 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나 봅니다.
녀석을 기도로 키워야 함을 알기에 녀석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제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들어섰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느끼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제 기억에 남아있는 부모님들의 모습 하나 하나가 제겐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호강한번 못 받고 고생만 하시다 하늘나라에 가셨네요.
부모님 가르침 생각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많이 나누며 살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저희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다음에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2005. 5. 8

큰아들 양미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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