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소록도를 다녀오면서 그분들이 선물해 주신 호박을
차에 싣고 왔었다. 오로지 선물할 수 있는 것은 호박과 고구마뿐
이라며 수줍게 건네주시던 귀한 호박을 가지고 오늘 호박죽을 끓
였다. 성탄 예배를 드린 후 전 교인이 나눠 먹는 호박죽에서 끈
끈한 정을 느낀다. 예배당 식당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호박이 보
이질 않음에 흔적이 없어져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육지에서 왔다가 아쉬운 정을 남겨 놓은 채 신정 때 다시 오
마 하며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에게 호박을 한
덩이씩 안겨 보낸 그녀는 마루에 앉아서 수평선에 걸쳐 있는 뭉
게구름을 보고 있다. 올해는 그런 대로 기운이 있어서 호박 구덩
이도 팠고 또한 거름도 줄 수 있었는데 내년에는 이 건강이 기다
려 줄 것인가를 생각하노라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진다. 밤새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요즘 절실히 피부에 와 닿는다.
죽지 못해 살아가며 사람다운 대접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살아
오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멍쩡하던 몸으로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발견하게 된 문둥병(한센병). 그로 인해
깨져 버린 가정. 정든 고향, 정든 부모 형제,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끌려 올 때
마다 뿌려지던 피눈물이 황톳길을 적시던 순간들.... 짐승만도 못
한 학대를 받으며 오로지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택함을 받은 남편 감이
단종대위에서 거세 수술을 받고 난 후 피눈물 흘리며 절규하던
모습... 순간 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간 것 같다.
오로지 의지할 곳이 하늘이라 생각하며 믿게 된 예수. 그 예
수를 믿음으로 찾아온 마음의 평화,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의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도하던 나날 속에 찾아오기 시작한 육지
사람들... 처음엔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며 준비해 온 물건들을 밀
쳐 주곤 부리나케 가 버리던 사람들로 인해 받아야 했던 가슴앓
이들... 이젠 나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이 됐다며 정부에서 발급해
준 장애인 수첩을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던 순간들...
그런 와중에도 육지에서는 꾸준하게 방문을 해 주고 있었다.
그들도 이젠 서로 악수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인
식이 좋아 졌다는 것이리라. 반갑게 악수해 주던 그 모습이 너무
나 좋아서 같은 동료끼리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떠
오른다. 그들에게 선물로 주겠노라며 호박을 심기로 하고 밭으로
나갔다. 조막손으로 변해 버린 손으론 곡괭이나 삽을 잡고 땅을
팔 수가 없어서, 손바닥에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저로 호박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려서 두 서너개 구덩이를
파고, 다음 날도 또 판다. 이렇게 판 호박 구덩이가 열댓개 그 구
덩이에 퇴비를 넣고 흙을 덮고, 씨를 심고 흙을 덮어 며칠이 지
나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면, 인공수정
을 해 주며 키워 낸 줄기에서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 갈 땐, 호박
한 덩이를 선물로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육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그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만 생각하면 모든게 좋
았다.
그렇게 깊은 사랑이 담긴 호박으로 죽을 쑤어서 400여명의 성
도들이 나눔을 가졌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언젠간 성도들도
호박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또 다시 소록도를
방문한다. 새해를 그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서 일
까...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다행이 이번에는 운전하고
갈 사람들이 넉넉하니 좋다. 익명을 요구하는 분들로부터 두툼한
겨울 외투와 잠바, 작업복, 목도리 등을 지원 받아 놨다. 이젠 그
들과 가슴 깊이 흐르는 정을 나누고 오는 일만 남았다. 지금 내
귀엔 방금 받은 전화에서 들리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집사님...
우리들은 먼길 무사하게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매일
새벽에요..."
1997/12/25
.................................................................
아들아...
세상에는 너무나 순수한 사람들도 있단다. 근데 넌 요즘 많이
변한 거 같아... 맨날 장난감이나 사 달라고 비디오나 빌려 보려
고 하고... 아빤 우리 준열이가 너무 영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순수하게 자랐으면 좋겠어... 알지? 아빠가 널 사랑하는거 말
이야... ^_^* 빙그레~
차에 싣고 왔었다. 오로지 선물할 수 있는 것은 호박과 고구마뿐
이라며 수줍게 건네주시던 귀한 호박을 가지고 오늘 호박죽을 끓
였다. 성탄 예배를 드린 후 전 교인이 나눠 먹는 호박죽에서 끈
끈한 정을 느낀다. 예배당 식당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호박이 보
이질 않음에 흔적이 없어져 버린 것 같은 아쉬움을 느낀다.
육지에서 왔다가 아쉬운 정을 남겨 놓은 채 신정 때 다시 오
마 하며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에게 호박을 한
덩이씩 안겨 보낸 그녀는 마루에 앉아서 수평선에 걸쳐 있는 뭉
게구름을 보고 있다. 올해는 그런 대로 기운이 있어서 호박 구덩
이도 팠고 또한 거름도 줄 수 있었는데 내년에는 이 건강이 기다
려 줄 것인가를 생각하노라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진다. 밤새
안녕하시냐는 인사가 요즘 절실히 피부에 와 닿는다.
죽지 못해 살아가며 사람다운 대접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살아
오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멍쩡하던 몸으로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발견하게 된 문둥병(한센병). 그로 인해
깨져 버린 가정. 정든 고향, 정든 부모 형제, 사랑하는 가족들을
뒤로한 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끌려 올 때
마다 뿌려지던 피눈물이 황톳길을 적시던 순간들.... 짐승만도 못
한 학대를 받으며 오로지 하늘을 향해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나날들...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택함을 받은 남편 감이
단종대위에서 거세 수술을 받고 난 후 피눈물 흘리며 절규하던
모습... 순간 순간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간 것 같다.
오로지 의지할 곳이 하늘이라 생각하며 믿게 된 예수. 그 예
수를 믿음으로 찾아온 마음의 평화,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의지...
하루 10시간 이상을 기도하던 나날 속에 찾아오기 시작한 육지
사람들... 처음엔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며 준비해 온 물건들을 밀
쳐 주곤 부리나케 가 버리던 사람들로 인해 받아야 했던 가슴앓
이들... 이젠 나환자가 아니라 장애인이 됐다며 정부에서 발급해
준 장애인 수첩을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던 순간들...
그런 와중에도 육지에서는 꾸준하게 방문을 해 주고 있었다.
그들도 이젠 서로 악수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만큼 인
식이 좋아 졌다는 것이리라. 반갑게 악수해 주던 그 모습이 너무
나 좋아서 같은 동료끼리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던 순간들이 떠
오른다. 그들에게 선물로 주겠노라며 호박을 심기로 하고 밭으로
나갔다. 조막손으로 변해 버린 손으론 곡괭이나 삽을 잡고 땅을
팔 수가 없어서, 손바닥에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저로 호박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걸려서 두 서너개 구덩이를
파고, 다음 날도 또 판다. 이렇게 판 호박 구덩이가 열댓개 그 구
덩이에 퇴비를 넣고 흙을 덮고, 씨를 심고 흙을 덮어 며칠이 지
나자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면, 인공수정
을 해 주며 키워 낸 줄기에서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 갈 땐, 호박
한 덩이를 선물로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육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그 모습이 좋았다. 그 모습만 생각하면 모든게 좋
았다.
그렇게 깊은 사랑이 담긴 호박으로 죽을 쑤어서 400여명의 성
도들이 나눔을 가졌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언젠간 성도들도
호박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또 다시 소록도를
방문한다. 새해를 그들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서 일
까...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다행이 이번에는 운전하고
갈 사람들이 넉넉하니 좋다. 익명을 요구하는 분들로부터 두툼한
겨울 외투와 잠바, 작업복, 목도리 등을 지원 받아 놨다. 이젠 그
들과 가슴 깊이 흐르는 정을 나누고 오는 일만 남았다. 지금 내
귀엔 방금 받은 전화에서 들리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집사님...
우리들은 먼길 무사하게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매일
새벽에요..."
199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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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세상에는 너무나 순수한 사람들도 있단다. 근데 넌 요즘 많이
변한 거 같아... 맨날 장난감이나 사 달라고 비디오나 빌려 보려
고 하고... 아빤 우리 준열이가 너무 영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순수하게 자랐으면 좋겠어... 알지? 아빠가 널 사랑하는거 말
이야... ^_^*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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