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더운 날씨에 무전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 자체가 무리
였나 보다. 이제 그의 다리엔 기운이 빠지고, 눈동자에도 점점 빛
을 잃어 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밭은 이제 모든 것을 앗
아 가고 있는 것 같다. 40일간의 긴 여정, 그의 배낭도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져 이젠 어린아이가 등에 짊어지더라도 무게를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그의 배낭에 담긴 것은 필기구뿐이다. 40
일 동안 여행을 하며 적어 온 귀중한 자료들이 그의 모든 삶과
같다. 행여 뱀이라도 눈에 띄면 잡아 먹을 거라며 허리에 찬 나
이프를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늘을 쳐다보지만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를 조롱하기라
도 하듯이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던 오아시스
는 모두가 신기루였다. 커다랗게 서 있던 선인장마저 다가서면
없어지는 환상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어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린다.
유난히도 피부에 버짐이 많이 나던 소년이 있었다. 버짐이 옮
는다고 모두가 외면하는 그에게 친구들이 있을리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더러는 침을 뱉는 친구
들도 있었고, 어른들마저 그 소년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 소년은 언제부터인지 화초를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
다. 그의 화단은 토담 아래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담 아래엔 언제
나 꽃이 피어 있었다. 할머니가 배아플 때 약으로 쓰신다며 심어
놓은 양귀비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어느 날 동네 이장님과
지서 순경 아저씨가 찾아 왔다. 토담 아래를 지나며 화단을 쑥대
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가 뿌려 놓은 양귀비를 찾느라고
온통 화단을 망쳐 놓았다. 화단을 걸어다니던 순경 아저씨가 갑
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발바닥을 보면서 죽는다 소리
지른다. 이장님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들을 뽑아 주고 있었다. 백
년초 가시에 발바닥을 찔리신 순경 아저씨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듬성듬성 가시가 나 있는 백년초는 선인장
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한 조각을 떼어 땅에 심어 놓으면 금새
뿌리가 나고 새로운 새끼를 치는 번식력이 제법 강한 식물이다.
작은 꽃이 피면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그 꽃을 구경하던 소년이
었다. 그 백년초에 찔린 순경 아저씨와 이장님은 양귀비를 찾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버짐이 가득 번진 소년을 밀치며 돌아간다.
너무나 고소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할머니는 양
귀비를 모두 뽑아 깊은 광속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 찾지
못할 수밖에....
예수쟁이였던 할머니는 소년의 몸에 버짐 꽃이 피어 있는 곳
에 백년초로 처방을 해 주신 곤했다. 백년초를 한 개 꺾어다 가
시를 떼어 내고 껍질을 깍은 다음 돌절구에 찍어 끈적끈적한 것
을 듬뿍 발라 주곤 헝겊으로 싸매어 주셨다. 가시로 덮여 있는
백년초는 언제나 천덕꾸러기였다. 아무나 백년초를 사랑하지 않
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시를 벗겨 내고 속살을 들여다보니 모두
가 생명이었다. 죽어 가는 것을 살려주는 귀한 약재였다. 끈끈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님은 오늘도 백년초로 연고를 만들어
오셨다. 오늘따라 소년은 백년초를 바르기 싫다. 바르기 싫다고
도리질하는 그에게 할머님의 거친 손이 그 소년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할머님의 손바닥에 놓여진 백년초는 소년의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항상 십
자가 형상으로 약을 발라 주곤 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소년
에게 백년초의 속살을 먹으라고 강요를 하신다. 억지로 입에 넣
어 보니 쌉쌀한 맛이 영 먹기 싫다. 몰래 뱉어 내다가 할머님의
거친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고 말았다.
번쩍 눈이 떠졌다. 아직도 엄청 덮다.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
지 않다. 여기가 어딘가 돌아보니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것
이 아닌가. 주위를 돌아보던 그에게 파란 나무가 보였다. 선인장
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모르겠다. 할머님의 백년초
사랑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기어서조차 갈 수 없
을 것 같던 거리를 어느새 기어 왔다. 허리에 찼던 칼로 선인장
가시를 깎아 낸다. 껍질을 벗기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껍질
을 벗기니 부드러운 속살이 나타난다. 끈적끈적한 액이 흐르고
있다. 칼로 한 조각을 짤라 내어 입에 넣어 본다. 어릴 때 할머님
이 입에 넣어 주던 백년초의 맛이었다. 먼저 조금 빨아먹은 후
몇 조각을 먹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눈에 보이는 사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막이 끝나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선다.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게 이글거리던 태양도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조심스레 걸음을 떼어 본다. 다리
에 힘이 있다. 이젠 살았다는 확신이 선다. 조금만 더 가면 사막
이 끝남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는 생각을 한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제일 먼저 고향을 찾으리라. 그리고 할머님의 묘지에 찾
아가리라. 할머님의 무덤가에 백년초 한 뿌리를 심어 두리라. 예
쁜 꽃이 피는 선인장도 심어 두리라. 늦은 가을이 되면 백년초와
다른 선인장을 화분에 옮겨 집에서 키우리라.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할머님 무덤가에 다시 심어 주리라. 그의 발걸음은 점점 사
막을 벗어나고 있었다.
....................................................
아들아....
아빠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너에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르
쳐주고 싶어서인데 쉽지가 않구나.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있으니, 그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것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우리 포기하지 말고 살아 가자구나. 알았지? 사랑한다
아들아....
1998.6.23.
자오 나눔에서 나눔이가.
였나 보다. 이제 그의 다리엔 기운이 빠지고, 눈동자에도 점점 빛
을 잃어 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밭은 이제 모든 것을 앗
아 가고 있는 것 같다. 40일간의 긴 여정, 그의 배낭도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져 이젠 어린아이가 등에 짊어지더라도 무게를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그의 배낭에 담긴 것은 필기구뿐이다. 40
일 동안 여행을 하며 적어 온 귀중한 자료들이 그의 모든 삶과
같다. 행여 뱀이라도 눈에 띄면 잡아 먹을 거라며 허리에 찬 나
이프를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늘을 쳐다보지만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를 조롱하기라
도 하듯이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던 오아시스
는 모두가 신기루였다. 커다랗게 서 있던 선인장마저 다가서면
없어지는 환상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어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린다.
유난히도 피부에 버짐이 많이 나던 소년이 있었다. 버짐이 옮
는다고 모두가 외면하는 그에게 친구들이 있을리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더러는 침을 뱉는 친구
들도 있었고, 어른들마저 그 소년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 소년은 언제부터인지 화초를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
다. 그의 화단은 토담 아래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담 아래엔 언제
나 꽃이 피어 있었다. 할머니가 배아플 때 약으로 쓰신다며 심어
놓은 양귀비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어느 날 동네 이장님과
지서 순경 아저씨가 찾아 왔다. 토담 아래를 지나며 화단을 쑥대
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가 뿌려 놓은 양귀비를 찾느라고
온통 화단을 망쳐 놓았다. 화단을 걸어다니던 순경 아저씨가 갑
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발바닥을 보면서 죽는다 소리
지른다. 이장님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들을 뽑아 주고 있었다. 백
년초 가시에 발바닥을 찔리신 순경 아저씨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듬성듬성 가시가 나 있는 백년초는 선인장
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한 조각을 떼어 땅에 심어 놓으면 금새
뿌리가 나고 새로운 새끼를 치는 번식력이 제법 강한 식물이다.
작은 꽃이 피면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그 꽃을 구경하던 소년이
었다. 그 백년초에 찔린 순경 아저씨와 이장님은 양귀비를 찾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버짐이 가득 번진 소년을 밀치며 돌아간다.
너무나 고소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할머니는 양
귀비를 모두 뽑아 깊은 광속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 찾지
못할 수밖에....
예수쟁이였던 할머니는 소년의 몸에 버짐 꽃이 피어 있는 곳
에 백년초로 처방을 해 주신 곤했다. 백년초를 한 개 꺾어다 가
시를 떼어 내고 껍질을 깍은 다음 돌절구에 찍어 끈적끈적한 것
을 듬뿍 발라 주곤 헝겊으로 싸매어 주셨다. 가시로 덮여 있는
백년초는 언제나 천덕꾸러기였다. 아무나 백년초를 사랑하지 않
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시를 벗겨 내고 속살을 들여다보니 모두
가 생명이었다. 죽어 가는 것을 살려주는 귀한 약재였다. 끈끈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님은 오늘도 백년초로 연고를 만들어
오셨다. 오늘따라 소년은 백년초를 바르기 싫다. 바르기 싫다고
도리질하는 그에게 할머님의 거친 손이 그 소년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할머님의 손바닥에 놓여진 백년초는 소년의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항상 십
자가 형상으로 약을 발라 주곤 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소년
에게 백년초의 속살을 먹으라고 강요를 하신다. 억지로 입에 넣
어 보니 쌉쌀한 맛이 영 먹기 싫다. 몰래 뱉어 내다가 할머님의
거친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고 말았다.
번쩍 눈이 떠졌다. 아직도 엄청 덮다.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
지 않다. 여기가 어딘가 돌아보니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것
이 아닌가. 주위를 돌아보던 그에게 파란 나무가 보였다. 선인장
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모르겠다. 할머님의 백년초
사랑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기어서조차 갈 수 없
을 것 같던 거리를 어느새 기어 왔다. 허리에 찼던 칼로 선인장
가시를 깎아 낸다. 껍질을 벗기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껍질
을 벗기니 부드러운 속살이 나타난다. 끈적끈적한 액이 흐르고
있다. 칼로 한 조각을 짤라 내어 입에 넣어 본다. 어릴 때 할머님
이 입에 넣어 주던 백년초의 맛이었다. 먼저 조금 빨아먹은 후
몇 조각을 먹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눈에 보이는 사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막이 끝나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선다.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게 이글거리던 태양도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조심스레 걸음을 떼어 본다. 다리
에 힘이 있다. 이젠 살았다는 확신이 선다. 조금만 더 가면 사막
이 끝남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는 생각을 한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제일 먼저 고향을 찾으리라. 그리고 할머님의 묘지에 찾
아가리라. 할머님의 무덤가에 백년초 한 뿌리를 심어 두리라. 예
쁜 꽃이 피는 선인장도 심어 두리라. 늦은 가을이 되면 백년초와
다른 선인장을 화분에 옮겨 집에서 키우리라.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할머님 무덤가에 다시 심어 주리라. 그의 발걸음은 점점 사
막을 벗어나고 있었다.
....................................................
아들아....
아빠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너에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르
쳐주고 싶어서인데 쉽지가 않구나.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있으니, 그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것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우리 포기하지 말고 살아 가자구나. 알았지? 사랑한다
아들아....
1998.6.23.
자오 나눔에서 나눔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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