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41] 백년초 사랑.

자오나눔 2007. 1. 15. 12:12
     이 무더운 날씨에  무전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  자체가 무리
  였나 보다. 이제 그의 다리엔 기운이 빠지고, 눈동자에도 점점 빛
  을 잃어 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모래밭은  이제 모든 것을 앗
  아 가고 있는 것  같다. 40일간의 긴 여정, 그의 배낭도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져 이젠  어린아이가 등에 짊어지더라도 무게를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그의 배낭에 담긴 것은 필기구뿐이다. 40
  일 동안 여행을  하며 적어 온 귀중한  자료들이 그의 모든 삶과
  같다. 행여 뱀이라도  눈에 띄면 잡아 먹을 거라며 허리에  찬 나
  이프를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지만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하늘을 쳐다보지만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를 조롱하기라
  도 하듯이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던 오아시스
  는 모두가  신기루였다. 커다랗게  서 있던 선인장마저  다가서면
  없어지는 환상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어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린다.
     유난히도 피부에 버짐이 많이 나던 소년이  있었다. 버짐이 옮
  는다고 모두가 외면하는 그에게 친구들이  있을리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더러는 침을  뱉는 친구
  들도 있었고, 어른들마저 그 소년을 천덕꾸러기로 만들어 버렸다.
  그 소년은 언제부터인지 화초를 가꾸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
  다. 그의 화단은 토담 아래로 만들어져 있었다. 토담 아래엔 언제
  나 꽃이 피어 있었다. 할머니가 배아플 때  약으로 쓰신다며 심어
  놓은 양귀비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어느 날  동네 이장님과
  지서 순경 아저씨가 찾아 왔다. 토담 아래를  지나며 화단을 쑥대
  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할머니가  뿌려 놓은 양귀비를  찾느라고
  온통 화단을 망쳐  놓았다. 화단을 걸어다니던 순경  아저씨가 갑
  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발바닥을 보면서 죽는다  소리
  지른다. 이장님이 발바닥에 박힌  가시들을 뽑아 주고 있었다. 백
  년초 가시에 발바닥을 찔리신 순경 아저씨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듬성듬성 가시가 나 있는 백년초는 선인장
  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한 조각을  떼어 땅에 심어 놓으면  금새
  뿌리가 나고 새로운  새끼를 치는 번식력이 제법  강한 식물이다.
  작은 꽃이 피면 너무나  아름다워 항상 그 꽃을 구경하던 소년이
  었다. 그 백년초에  찔린 순경 아저씨와 이장님은  양귀비를 찾지
  못하고 투덜거리며  버짐이 가득  번진 소년을 밀치며  돌아간다.
  너무나 고소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할머니는 양
  귀비를 모두 뽑아 깊은 광속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 찾지
  못할 수밖에....
     예수쟁이였던 할머니는 소년의 몸에  버짐 꽃이 피어 있는 곳
  에 백년초로 처방을  해 주신 곤했다. 백년초를 한 개  꺾어다 가
  시를 떼어 내고 껍질을  깍은 다음 돌절구에 찍어 끈적끈적한 것
  을 듬뿍  발라 주곤 헝겊으로  싸매어 주셨다. 가시로 덮여  있는
  백년초는 언제나  천덕꾸러기였다. 아무나 백년초를 사랑하지  않
  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시를 벗겨 내고  속살을 들여다보니 모두
  가 생명이었다. 죽어 가는  것을 살려주는 귀한 약재였다. 끈끈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님은 오늘도  백년초로 연고를 만들어
  오셨다. 오늘따라  소년은 백년초를 바르기  싫다. 바르기 싫다고
  도리질하는 그에게  할머님의 거친 손이 그  소년의 손목을 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할머님의 손바닥에 놓여진 백년초는  소년의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항상 십
  자가 형상으로 약을  발라 주곤 하셨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소년
  에게 백년초의 속살을  먹으라고 강요를 하신다. 억지로  입에 넣
  어 보니 쌉쌀한  맛이 영 먹기 싫다. 몰래 뱉어  내다가 할머님의
  거친 손바닥에 뺨을 얻어맞고 말았다.
     번쩍 눈이 떠졌다. 아직도  엄청 덮다.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
  지 않다. 여기가 어딘가 돌아보니 사막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것
  이 아닌가. 주위를 돌아보던  그에게 파란 나무가 보였다. 선인장
  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모르겠다. 할머님의 백년초
  사랑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기어서조차 갈  수 없
  을 것 같던  거리를 어느새 기어 왔다. 허리에 찼던  칼로 선인장
  가시를 깎아 낸다. 껍질을 벗기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껍질
  을 벗기니  부드러운 속살이  나타난다. 끈적끈적한 액이  흐르고
  있다. 칼로 한 조각을 짤라 내어 입에 넣어 본다. 어릴 때 할머님
  이 입에  넣어 주던 백년초의  맛이었다. 먼저 조금 빨아먹은  후
  몇 조각을  먹고 나니 기운이  솟는다. 눈에 보이는 사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막이 끝나 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선다.  하늘을 쳐다본다.  그렇게 이글거리던 태양도
  빛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조심스레 걸음을 떼어 본다. 다리
  에 힘이 있다. 이젠  살았다는 확신이 선다. 조금만 더 가면 사막
  이 끝남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는 생각을 한다. 이제 이 여행이
  끝나면 제일 먼저  고향을 찾으리라. 그리고 할머님의  묘지에 찾
  아가리라. 할머님의 무덤가에 백년초  한 뿌리를 심어 두리라. 예
  쁜 꽃이 피는 선인장도 심어 두리라. 늦은  가을이 되면 백년초와
  다른 선인장을 화분에  옮겨 집에서 키우리라. 그리고  봄이 되면
  다시 할머님 무덤가에 다시 심어 주리라. 그의  발걸음은 점점 사
  막을 벗어나고 있었다.
     ....................................................
     아들아....
     아빠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너에게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가르
  쳐주고 싶어서인데 쉽지가 않구나.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있으니, 그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것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우리 포기하지 말고 살아 가자구나. 알았지? 사랑한다
  아들아....
     1998.6.23.
     자오 나눔에서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