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 186] 남산에서 보물찾기

자오나눔 2007. 1. 15. 12:57
남산에서 보물찾기라는 제목 때문에 호기심이 많은 아들 녀
석은 기대가 크다. 도대체 무슨 보물을 찾았는가 궁금한가 보다.
소록도 동생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께 겨울 난방비와 겨울 용
품을 마련하여 내려갔었다. 우리 일행은 열심히 낡은 전선과 조
명을 교체 또는 수리를 해 주고 돌아왔다. 밤새 차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새벽이다. 몸이 피곤한 것은 당연하지만 마침 추수 감
사 주일이라 2부 예배를 드렸다. 한참 설교를 듣고 있는데 뒤통
수를 강하게 때리는 생각, 아! 약을 챙기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지인들이 피부병으로 너무나 고생하고 있기에 작년부터 부탁하여
이번에 겨우 구해 왔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

예배를 마치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 소록도에 같이 갔던 남
형석씨께 전화를 한다. "형~ 미동입니다." "어~그래 무슨 일인
가?" "형 어제 제가 맡긴 약 있잖아요?" "응~ 근데 왜?" "그 약
차에서 내렸어요?" "아차! 안 내렸는데... 랜트카 의자 밑에 넣어
두고... 이 일을 어째~" "알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랜트카 회
사에서 보관해 놓았으리라 생각하고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랜트
카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우리가 빌렸던 그레이스 승합차가 영업
을 나갔단다. 일단 아내를 랜트 회사에 보내 확인을 해 본다. 그
러나.... 약이 없어졌다. 갑자기 당황하는 우리들... 그레이스 승합
차를 운전하고 간 기사와 통화를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
가...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안중근 의사 동상 아
래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단다. 아고... 그 약이 얼마나 귀한건
데.... 약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데... 약을 구해 왔느냐고
물어 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주일이니 청소차가 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점심도 먹지 않고 차를 타고 남산으로 달
린다. 차엔 운전석엔 남형이, 조수석엔 내가, 뒷좌석엔 아내와 아
들이 타고 있다. 영문도 모르는 아들은 서울에 간다고 하니 신났
다. 남산을 올라가는 입구에서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을 물어 본
다. 남산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여지
없이 촌놈임이 발각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들에게
직접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소개해 줄 수 있었고, 안중근 의사
의 동상을 보여 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길가에 있는 은행나
무들이 아직은 멋을 내고 있다. 그 아래 앉아 있는 어느 할머님
머리 위로 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차는 어느새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 섰다. 차를 주차하기도
전에 차에서 내려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간다. 몇 가지 쓰레기
가 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관리소에 물어 보니 오전에 한 번
수거하여 청소차에 실어 놨단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청소차로 간
다. 비닐 봉지에 가득 담긴 수많은 쓰레기 봉지를 한 개씩 쏟아
놓고 확인을 한다. 크기가 작은 마가린 통 정도 되기에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다. 엄청난 악취... 남형과 아내는 부지런히 쓰레기
를 쏟고 다시 담고... 아들은 이곳 저곳을 구경하다 엄마 아빠가
있는지 확인하곤 또 다시 구경을 간다. 아침에 아내에게 비익조
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었다. 한쪽 눈과 한쪽 날개만 없는 새이
지만, 반대쪽의 기능이 있는 짝을 만나면 사랑을 하게 되고 반쪽
의 기능을 회복하여 힘차게 날아다닌다고...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비익조... 우리 사이가 비익조와 같지 않
을까 생각해 본다고...

남형과 아내는 투덜거림 속에서도 아내는 부지런히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어느새 장갑은 흠뻑 젖었다. 마지막 남은 쓰레기 봉
지를 쏟아 놓고 뒤져보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한 약은 나오지 않
았다. 건선 피부염 때문에 고생하던 지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러나 어쩌랴... 수많은 종류의 쓰레기들을 뒤지며 환경 미화원들
을 생각했다. 새벽부터 쓰레기를 치우는 분들... 남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집을 나서고, 가족과 함께 피서도 가고 싶고,
명절 때도 쉬고 싶지만, 언제나 남을 위해 자신들을 포기할 줄
아는 분들... 그분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비록 우리가 찾던 보물
은 찾지 못했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보물을 찾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의 악취를 청소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알게 됐
다. 이보다 더 귀한 보물이 있을까? 남산에서 보물찾기는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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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단 몇 시간의 체험이었지만 청소차 한 대를 다 뒤지며 찾은
보물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 날씨도 추워
지는데 길을 지나다 환경 미화원 아저씨들을 만나면 따뜻한 인사
라도 할 줄 아는 우리가 되자구나. 따끈한 커피 한잔 대접해 드
릴 수 있으면 더 좋겠지? 그러면 올 겨울이 무척 따뜻할 거야~
그치? 사랑한다 아들아...
99.11.22
부천에서 나눔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