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199] 목욕

자오나눔 2007. 1. 15. 13:04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아들이 없는 아버지들이 아쉬운 것은 아
   들과 함께 목욕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버
   지와 아들이 함께 목욕을 하면서 남자들만의 정도 느끼게 되고 속내를
   털어놓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들이 있
   는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보라고 권유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나도 아들과 목욕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처럼 목욕탕에  가는 게 아
   니라 집에서 한다.  특별한 경우에는 가족끼리 여관에 가서  씻기도 한
   다. 온몸에 화상으로  수술을 많이 받았지만 흉측한 흉터는  그대로 있
   다. 옷을  입으면 잘생긴 남자인데 벗고  보면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전에 용기를 내어 목욕탕에 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벗고
   목발을 짚고 목욕탕 실내로 들어가는데 어떤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도
   망가다 넘어져 머리가 깨졌다.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아이가 그렇게 되
   니 참 힘들었다. 얼마를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집에서 하는 것도 남을
   위한 배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에 나의 벗은  몸을 본 사람은 아
   내와 아들뿐이다.

      내 아들 양준열.  이제 9살인 준열이는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 늦
   다. 양쪽  귀가 들리지 않다가 이제야  보청기 덕분에 들을 수  있으니
   요즘은 분주하다. 궁금한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더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는 조금 뒤떨어져  살아왔지만 점점 좋아지리라 믿는다.  감사
   의 조건이다.
      준열이와 난 목욕을 할  때면 서로에게 비누칠해서 씻어 주느라 바
   쁘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행복을 지키려면 내가 건강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궁금한 것도 물어  볼 수 있어 준열이는  좋은가
   보다.

      오늘도 준열이와 목욕을 하면서 느낀 거... 많이 컸구나. 그 어린 핏
   덩이가 많이 컸구나  였다. 녀석은 흉측한 아빠의 온몸에  비누칠을 해
   주면서 좋아한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아빠는 왜 나하고 목욕하면
   좋아해요? 그렇게  좋아요?" 한다.  녀석의 질문을 들으면서도  기분이
   좋다. "그럼~ 얼마나 좋은데... 아빠가 아들  등 밀어 주고, 아들이 아빠
   등 밀어 줄 때 사랑이 흐르기 때문이란다."
      녀석의 질문은  또 이어진다. "아빠! 그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에
   요?" "그럼~  당연하지 우린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와 아들인
   데..." 녀석이 또 묻는다.  "아빠 가게에 불났을 때 도망가지 왜  불끄다
   가 아빠가 탔어요?"  "음... 소방차가 오기 전에  불이 번지면 가스통이
   터질 것 같아서  불을 끈 거야... 다음에 자세히 알려  줄께~" 녀석과의
   대화는 목욕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22년전... 내 나이 19살  때, 그때 처음으로 아버님과 목욕탕에 갔었
   다. 평소 호랑이처럼 무서우셨던  아버님었는데, 그날 내 등을 밀어 주
   시며 흐뭇해하시던 아버님의  표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아버님이
   하늘나라에 가신지  13년이 지났지만, 그  모습이 아직도 좋기만  하는
   이유는 아마... 그리움 때문일 게다.
      200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