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사랑하는 아들아

[아들아...203] 혹부리 할아버지

자오나눔 2007. 1. 15. 13:08
     자오쉼터와 100미터 정도 떨어진 집에는 뒷목과 머리 사이에 어른 주먹만한 혹을 달고 다니는 할아버지가 살고 계신다. 지금 연세는 88세이신데 아직도 지게를 지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고향이 황해도 해주라고 하신다. 어느날 쉼터에 놀러 오셨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주로 내가 듣는 편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생이별을하고 이남으로 넘어 왔단다. 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 4명이 살고 있었고... 그러다 이남에서 다시 결혼을 하고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는데, 죽은줄만 알았던 본처와 딸들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두 가정을 꾸리며 살게 되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두 아내는 모두 하늘 나라에 가고, 10명이나 되는 아들 딸들은 시집 장가를 가서 잘 살고 있단다. 지금은 포도와 버섯농사를 하고 있는 큰 아들이랑 살고 계신다. 며칠전에 밭에 가시는지 괭이와 삽을 들고 지나가시기에 인사를 드리며, 장인도 이사 오셨으니 놀러 오시라고 했었다. 얼마나 반가우셨는지 금방 일 해놓고 오신다더니 30분도 안되어 쉼터러 찾아 오셨다. 첫날 두분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보다. 장인도 연평도가 고향이라 두분이 요즘 자주 만나신다.

     사건은 엉뚱한 사람에게서 터져 나온다. 우리집 개구장이 준열이. 녀석은 호기심이 참 많다. 책을 많이 읽게 하는 편인데, 책에서 보았던 것이 자기 눈에 뜨이면 꼭 만져보고 확인을 하면서 자기가 궁금했던 것을 해결한다. 그런데 녀석이 외할아버지랑 혹부리 할이버지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혹부리 할아버지 혹을 살며시 만져 본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하지 말라며 혼을 냈다는 말을 듣고 녀석에게 정신교육을 시켜야겠다며 사무실로 불렀다.
     "아들!"
     "네..."
     "요즘 책 많이 읽고 있는거지?"
     '네~ 어제는 무슨 책을 읽었고요... 오늘은... 어쩌고 저쩌고.."
     "그런데 아들 아빠한테 혼나야 하는데?"
     "왜요?"
     "아들 며칠전에 혹부리 할아버지 혹을 만졌다면서?"
     "..."
     "책에서 혹 달린 도깨비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책에서는 혹이 말랑말랑 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진짜 말랑말랑 한가 만져 본거에요..."
     "윽! 뭐시라?"
     "그런데 할아버지 혹은 딱딱했어요. 책에서는 말랑말랑하다고 했는데..."
     "아무리 궁금해서 그러더라도 남에게 함부로 하면 안되는거야. 준열이 보청기를 친구들이 말도 없이 빼보고 그러면 기분 좋겠어?"
     "아니요..."
     "이제부터는 어른들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아무리 궁금한게 있어도 참고 있다가 어른들이 이야기가 끝나면 물어 보는거야. 알았지?"
     "네..."
     "그런데 아빠. 왜 책에서는 도깨비 혹이 말랑말랑하다고 했는데 할아버지 혹은 딱딱해요?"
     "음... 그거야 도깨비하고 사람이잖아..."
     아무튼 아들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12살이면 자기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터인데 녀석에게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어른들에게 나만 잘하고 아이에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녀석에게 학교에 오고 갈때 할아버지께 인사하기, 엄마 아빠 방이라도 들어 갈 때는 노크하기, 강아지들 똥 치우기 등, 몇가지 지적을 해 주니 제대로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결론은 내가 아이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더 많이 기도해 주고,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줘야겠다. 근데 그 혹부리 할아버지 혹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2003.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