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여름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이유는 짜릿함이 있
기 때문이다. 비오듯 땀을 흘리다가도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시원
한 우물물 한 바가지 등에 끼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가. 드
넓은 백사장을 달려 청파백파(靑波白波)가 수를 놓은 바닷물 속
으로 텀벙 들어갈 때 그 짜릿함. 깊은 계곡에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그곳에 발 담그고 있을 때의 전율, 강바람 시원한
곳에 텐트를 치고 투망을 던질 때의 환희... 이런 것들이 있기에
더운 여름이지만 좋아하는가 보다.
나도 여름이 좋았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여름이 반갑지
만은 않다. 심한 전신 75%의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면서 피부
가 형성을 하지 못해, 물에 몸을 담그면 약한 피부가 그대로 일
어나 더위와 함께 기분이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젖먹
이 아이를 두고 가게 팔아 가출을 해 버린 상태였기에, 누나 집
에서 투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는 24시간 돌아가지
만 시원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감사한 건 더운 바
람이라도 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날마다 더위와 아픔과 가려움
에 초죽음이 되고 있었다. 1인용 침대엔 언제나 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매일 시트를 갈아주지만 금방 상처에서 나온 진물로 더
렵혀지곤 했다. 빚을 내어 투병 생활을 했었는데 더 이상 빚을
낼 곳도 없고하여 그냥 누나 집에서 누워 있는 정도였다. 가게
팔아 도망간 아내를 원망도 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날마
다 나오는 건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내 곁에는 다 떠난 사람뿐이
었다. 오로지 누나만 핏줄이라는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나를 간호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밝은 얼굴로 무엇을 가지고 왔다. 앉
아서 눈을 감으라 하더니 차가운 것을 머리와 목, 등에다 올려
주었다. 딱딱한 것이었는데 무척 시원했다. 물을 몸에 묻힐 수 없
는 처지라 물에 적신 수건을 꼭 짜서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나
에게 덮어 준 것이다. 우와! 얼마나 시원하던지... 지금까지 그렇
게 시원했던 순간은 없었다. 언제나 누나 집에 냉장고 냉동실은
수건이 많이 얼려 있었다. 나를 위해 냉동실에 얼려야 할 것은
될 수 있는 한 다른 방법을 취하며 살았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고 누나네 가족들도 수건을 부지런히 꺼내다 준다. 내 혼
자 걸을 수가 없었기에, 혼자선 손을 쓸 수도 없었기에 내 손발
이 되어 주었다. 날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용기가 생기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을 위해 사는 삶을 택했다. 결국 나누는
삶을 살다 보니 몸도 많이 좋아져서 먼 거리는 휠체어로, 짧은
거리는 목발을 짚고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가정
도 생겼고, 사무실엔 친구가 에어컨도 사줘서 여름 보내기가 훨
씬 쉽다. 비가 오려면 날구지를 심하게 한다. 왼쪽 골반이 있는
부분을 통째로 들어냈고, 오른손목 이하로는 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왼손도 엄지와 약지만 사용할 수 있지만, 비가 오려면
구석구석이 쑤시고 저려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
는 여름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도 수건이 얼려 있다. 얼음
도 얼려 있다. 물론 샤워를 하지만 가끔은 아내가 얼음물로 수건
찜질을 해 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더욱 생각난다. 나는 다른 사람
의 사랑으로 살아가지만, 특히 여름엔 더욱 사랑을 받고 사는구
나..라는 생각이 말이다. 나에겐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에 무엇인들 못하랴. 또다시 소록도 봉사 갈 준비를 해야겠
다. 사랑의 계절이 내게 있기에....
2000년 8월 3일
부천에서 나눔
기 때문이다. 비오듯 땀을 흘리다가도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시원
한 우물물 한 바가지 등에 끼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가. 드
넓은 백사장을 달려 청파백파(靑波白波)가 수를 놓은 바닷물 속
으로 텀벙 들어갈 때 그 짜릿함. 깊은 계곡에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그곳에 발 담그고 있을 때의 전율, 강바람 시원한
곳에 텐트를 치고 투망을 던질 때의 환희... 이런 것들이 있기에
더운 여름이지만 좋아하는가 보다.
나도 여름이 좋았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여름이 반갑지
만은 않다. 심한 전신 75%의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면서 피부
가 형성을 하지 못해, 물에 몸을 담그면 약한 피부가 그대로 일
어나 더위와 함께 기분이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젖먹
이 아이를 두고 가게 팔아 가출을 해 버린 상태였기에, 누나 집
에서 투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는 24시간 돌아가지
만 시원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감사한 건 더운 바
람이라도 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날마다 더위와 아픔과 가려움
에 초죽음이 되고 있었다. 1인용 침대엔 언제나 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매일 시트를 갈아주지만 금방 상처에서 나온 진물로 더
렵혀지곤 했다. 빚을 내어 투병 생활을 했었는데 더 이상 빚을
낼 곳도 없고하여 그냥 누나 집에서 누워 있는 정도였다. 가게
팔아 도망간 아내를 원망도 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날마
다 나오는 건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내 곁에는 다 떠난 사람뿐이
었다. 오로지 누나만 핏줄이라는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나를 간호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밝은 얼굴로 무엇을 가지고 왔다. 앉
아서 눈을 감으라 하더니 차가운 것을 머리와 목, 등에다 올려
주었다. 딱딱한 것이었는데 무척 시원했다. 물을 몸에 묻힐 수 없
는 처지라 물에 적신 수건을 꼭 짜서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나
에게 덮어 준 것이다. 우와! 얼마나 시원하던지... 지금까지 그렇
게 시원했던 순간은 없었다. 언제나 누나 집에 냉장고 냉동실은
수건이 많이 얼려 있었다. 나를 위해 냉동실에 얼려야 할 것은
될 수 있는 한 다른 방법을 취하며 살았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고 누나네 가족들도 수건을 부지런히 꺼내다 준다. 내 혼
자 걸을 수가 없었기에, 혼자선 손을 쓸 수도 없었기에 내 손발
이 되어 주었다. 날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용기가 생기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을 위해 사는 삶을 택했다. 결국 나누는
삶을 살다 보니 몸도 많이 좋아져서 먼 거리는 휠체어로, 짧은
거리는 목발을 짚고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가정
도 생겼고, 사무실엔 친구가 에어컨도 사줘서 여름 보내기가 훨
씬 쉽다. 비가 오려면 날구지를 심하게 한다. 왼쪽 골반이 있는
부분을 통째로 들어냈고, 오른손목 이하로는 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왼손도 엄지와 약지만 사용할 수 있지만, 비가 오려면
구석구석이 쑤시고 저려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
는 여름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도 수건이 얼려 있다. 얼음
도 얼려 있다. 물론 샤워를 하지만 가끔은 아내가 얼음물로 수건
찜질을 해 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더욱 생각난다. 나는 다른 사람
의 사랑으로 살아가지만, 특히 여름엔 더욱 사랑을 받고 사는구
나..라는 생각이 말이다. 나에겐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에 무엇인들 못하랴. 또다시 소록도 봉사 갈 준비를 해야겠
다. 사랑의 계절이 내게 있기에....
2000년 8월 3일
부천에서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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