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단상] 여름은 사랑의 계절

자오나눔 2007. 1. 15. 23:16
      사람들이 여름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이유는 짜릿함이 있
   기 때문이다. 비오듯 땀을 흘리다가도 시원한 냉수 한 사발, 시원
   한 우물물 한 바가지 등에 끼얹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가. 드
   넓은 백사장을 달려  청파백파(靑波白波)가 수를 놓은 바닷물  속
   으로 텀벙  들어갈 때 그  짜릿함. 깊은 계곡에 유리알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그곳에 발 담그고  있을 때의 전율, 강바람  시원한
   곳에 텐트를 치고  투망을 던질 때의 환희... 이런  것들이 있기에
   더운 여름이지만 좋아하는가 보다.

      나도 여름이 좋았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여름이 반갑지
   만은 않다. 심한 전신 75%의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면서 피부
   가 형성을 하지  못해, 물에 몸을 담그면 약한 피부가  그대로 일
   어나 더위와 함께 기분이 찜찜함은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젖먹
   이 아이를 두고  가게 팔아 가출을 해 버린 상태였기에,  누나 집
   에서 투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풍기는  24시간 돌아가지
   만 시원한 바람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감사한 건  더운 바
   람이라도 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날마다 더위와  아픔과 가려움
   에 초죽음이 되고  있었다. 1인용 침대엔 언제나 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매일 시트를  갈아주지만 금방 상처에서 나온  진물로 더
   렵혀지곤 했다.  빚을 내어 투병  생활을 했었는데 더 이상  빚을
   낼 곳도  없고하여 그냥 누나  집에서 누워 있는 정도였다.  가게
   팔아 도망간 아내를  원망도 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날마
   다 나오는 건 한숨과 눈물뿐이었다. 내 곁에는  다 떠난 사람뿐이
   었다. 오로지 누나만 핏줄이라는 이유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나를 간호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밝은 얼굴로 무엇을 가지고  왔다. 앉
   아서 눈을  감으라 하더니 차가운  것을 머리와 목, 등에다  올려
   주었다. 딱딱한 것이었는데 무척 시원했다. 물을 몸에 묻힐 수 없
   는 처지라 물에 적신 수건을 꼭 짜서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나
   에게 덮어 준  것이다. 우와! 얼마나 시원하던지... 지금까지  그렇
   게 시원했던 순간은  없었다. 언제나 누나 집에  냉장고 냉동실은
   수건이 많이  얼려 있었다. 나를  위해 냉동실에 얼려야 할  것은
   될 수  있는 한 다른  방법을 취하며 살았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밝아졌고 누나네 가족들도  수건을 부지런히 꺼내다 준다.  내 혼
   자 걸을 수가  없었기에, 혼자선 손을 쓸 수도 없었기에  내 손발
   이 되어  주었다. 날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용기가 생기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된다.

      소외된 이웃과 장애인을 위해 사는 삶을  택했다. 결국 나누는
   삶을 살다  보니 몸도 많이  좋아져서 먼 거리는 휠체어로,  짧은
   거리는 목발을 짚고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가정
   도 생겼고, 사무실엔  친구가 에어컨도 사줘서 여름  보내기가 훨
   씬 쉽다. 비가  오려면 날구지를 심하게 한다.  왼쪽 골반이 있는
   부분을 통째로 들어냈고, 오른손목 이하로는 쓸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고, 왼손도 엄지와 약지만 사용할 수 있지만, 비가 오려면
   구석구석이 쑤시고 저려서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
   는 여름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도 수건이  얼려 있다. 얼음
   도 얼려 있다. 물론 샤워를 하지만 가끔은  아내가 얼음물로 수건
   찜질을 해 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더욱 생각난다. 나는 다른 사람
   의 사랑으로 살아가지만,  특히 여름엔 더욱 사랑을  받고 사는구
   나..라는 생각이 말이다.  나에겐 여름은 사랑의 계절이다. 사랑의
   계절에 무엇인들 못하랴.  또다시 소록도 봉사 갈  준비를 해야겠
   다. 사랑의 계절이 내게 있기에....
      2000년 8월 3일
      부천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