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밥도둑

자오나눔 2007. 1. 16. 12:49
  "형수 밥 한 공기 더 주세요. 이게 진짜 밥도둑이네요?"
  그들과 8년을 가깝게 지내면서도 처음으로 두 집 가족이 함께 밥상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큰아들이 자폐기가 있어서 특수교육을 시켜야 하는 형님, 내가 투병생활 할 때부터 나에게 용기를 주며, 무언가 삶의 의욕을 갖게 해 보려고 많은 시도를 해 왔던 분이다. 그렇다고 나와 혈연의 관계이거나 학교 동문이거나 지역이 같은 것도 아니다. 단지 예수 안에서 만난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친형제보다 더 정을 나누며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특수교육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고, 한번 찾아간다고 해 놓고도 그렇게 가기가 힘들었었다. 각자의 삶이 바빠서였다는 것은 단지 핑계일 뿐이다.

  서울에 나갈 일이 생겨서 아내와 상의를 한다. 일 마치고 돌아오면서 들려 보자고... 일을 마치고 우리 가족은 형님 댁을 방문했다. 당뇨 때문에 고생하시는 형님의 얼굴이 수척해지셨다. 나이 탓도 있으리라, 지나온 시절에 고생한 흔적이기도 하리라. 반가운 해후가 이루어졌다. 준열이는 형들과 오랜만에 만나니 신났다. 몇 년 전, 정말 힘들게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추억담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한다. 함께 저녁을 먹겠다며 시장에 찬을 마련하러 갔다던 형수님이 오셨다. 반가움... 때로는 반가움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눈자위가 붉어지는 모습을 보며 반가움을 발견한다. 형님과 나는 거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주방에서는 형수님과 아내가 가끔씩 웃음을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 방에서는 1년만에 만난 기쁨을 오락으로 풀고 있다.

  저녁을 먹자는 말에 자리에 앉았다. 찌개, 김치, 조개젓, 멸치 볶음이 소담스럽게 놓여 있는데, 또 다른 반찬이 눈에 보인다. 노란 알이 한눈에 들어오는 간장게장이다. 노란 알이 가득한 게를 뚝 잘라 훑어 먹으니 부드러운 속살이 혓바닥을 간지럽힌다. 짭짤하면서도 게 특유의 향이 그야말로 일미다. `수게는 찜, 암게는 게장'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모르게 밥 한 숟갈에 게장 다리를 훑고 있다. 작년 가을. 꽃게가 가장 비쌀 철에 다섯 마리를 사서 게장을 담아 놓고 귀한 손님이 오시면 내어놓겠다며, 비닐에 싸서 냉동실에 잘 보관해 놓았다가 한 마리 꺼내와 상에 올렸다고 한다. 삼삼하게 간이 배여 감칠맛이다. 다섯 마리밖에 담그지 않아서 귀한 것을 거침없이 우리를 위해 내어놓는 정에 마음이 뭉클하다.

  1년에 한 두 번은 꽃게찜을 먹을 기회가 생긴다. 꽃게찜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구석구석의 살을 발라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유안진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보면 자장면을 농부처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맛있게 먹는데 무슨 체면까지 차리며 먹어야겠는가. 체면을 차리며 먹을 때는 신경을 너무 쓰다보니까 그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게장을 먹을 때도 체면을 차려 먹으면 제 맛을 느끼기 힘들다. 젓가락으로 집어먹을 것이 아니라 한쪽다리를 잡고 뜯어먹어야 제 맛이다. 밥 한 그릇을 다 먹을 동안 게장은 반이나 남이 있다. 등껍질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 비벼서 먹으면 최고지만 벌써 두그릇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사람 산다는 것이 별건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서로 챙겨주고 격려하고 아파하고 기뻐하고... 그게 사는 재미가 아닐까? 힘들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귀한 손님이 오시면 내어놓을 밑반찬을 오래 전부터 담아 놓고, 깊은 맛이 나도록 정을 들이는 우리들의 정. 다섯 명의 귀한 손님 중에 우리 가족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솟아오르는 감동. 길을 가는 나그네에게 물 한그릇 건네는 것도 주님께 하는 것이라... 나는 내 이웃을 위해, 아니 가깝게 있는 내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내게는 귀한 것을 대접할 소중한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정(情)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 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나도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 준비해야겠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2002.1.8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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