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내 고향 청산도~

[고향] 고향과 빠삐용...5

자오나눔 2007. 1. 16. 12:56
   하루가 무척 길다는 생각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내에게 오후 배로 올라가자는 말을 또 해 본다. 고향에 도착하면 찾아 오겠다던 사람들도 감감무소식이다. 내년에 내려 올때는 모뎀이 달린 데스크 탑이라도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찍 잠자리에 누워 보지만 평소 새벽 2-3시까지 일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뒤척 저리뒤척 참 길고도 긴 하루다. 부산에서 내려온 사촌 동생들이 올라간다고 새벽부터 분주하다. 잠이 덜깬 아이들은 춥다며 자꾸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어제 밤에 미리 차를 부두에 두고 온 덕분에 배에 차를 실을 수 있게 되나보다. 대형 바지선에 차량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은 설 명절도 집에서 보내지 못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설 때도 열심히 일하는 분들이 많다. '누군가 편암함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수고하고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수출현장에서, 전후방에서, 생활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멋진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동생들도 육지로 나가고 집안이 조용하다. 작은 아버님과 함께 아침상을 받아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부모님의 마음이래야 모두 걱정거리 아니겠는가.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내의 오전일이 끝나자 친구와 함께 부두로 나갔다. 차를 달리다보니 핸드폰이 터진다. 문자 메시지가 들어 오기 시작한다. 통신수단이 바뀐 후 사람들이 무기력해졌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두에 나가보니 많은 분들이 섬을 빠져 나가려고 몰려 있다. 반가운 지인들을 만난다. 22년, 25년만에 만난 중학교 동창들이 반갑다. 각자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단다. 장애인이 되어 있는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의 걱정이 고맙다. 그래도 잊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있게 살아가는 나를 소개해 주니 웃음으로 화답해 준다. 원사로 근무하는 친구가 제대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도 들어 본다. 사회에 나와서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다방에 들려 커피 한잔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데 어느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는데 나는 모르겠다. 주변머리(대머리)가 없는 아저씨를 보니 기억에 없다. 설명을 듣고 나니 2년 선배다. 그것도 내가 존경했던 선배. 외모가 변하니 알아볼 수 없음이 당연하지만 너무나 미안했다. 친구들에게 고향의 비전을 듣다가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 선다. 고향 일주를 하기로 했다. 카메라 필름 한통을 사서 카메라에 넣는다. 섬을 중간쯤 돌았을 때 어장배들이 몇척 보인다. 가보니 아직 고기는 없단다. 낙지배가 오후 3시쯤 들어 온단다. 개펄에는 멀리까지 물이 빠져 있다. 나머지 일주를 하고 나서 다시 그 자리에 가니 마침 배가 한척 들어와 있다. 세발 낙지와 50센치 정도 큰 강성돔이 있다. 낙지 26마리, 강성돔 한마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 온다. 강성돔은 부모님께 드리니 할머님 제사 때 사용하겠단다.

   세발낙지를 쭈욱 훑어서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어주는 친구, 입안에서 휘감아오는 낙지의 힘이 보통이 아니다. 지인들이 생각난다. 이럴 때 함께 있으면 좋을텐데... 어느새 고향의 생활에 적응을 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루라도 더 빨리 섬을 빠져 나오려고 했던 나를 보면서 빠비용 마음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냥 편하게 고향에서 안주하고 싶어하고 있으니 이런...
   아내에게 내일 올라갈 준비를 하라고 해 놓고 마음을 정리해 본다. 나는 나대로의 삶이 있다. 아직은 편안하게 안주할 때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장애인 공동체를 만들어 놓고, 가장 적당한 사람을 책임자로 세워 놓고,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 시켜 놓은 다음에 당당하게 고향으로 돌아 와야 한다. 그때는 편안하게 안주해도 좋으리.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셔서 우리에게 주실 고향의 선물을 챙기고 계시는 작은어머님, 지금까지 우리가 무료급식은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벌써 3년째 하고 있다는 말에 놀라는 눈치다. 이것 저것을 챙겨 주신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목발을 짚고 앞마당을 서성거려 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 가려는 것 처럼...
   아침 밥을 먹고 차에 짐을 싣는다. 하루라도 더 있다 갔으면 좋겠다는 작은아버님의 말씀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올라가야 한다. 뱃머리를 향해 차가 떠나는 순간까지 동구밖에 나와 손을 흔들고 계시는 두분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내년에 찾아 뵐 때까지 건강하세요. 내년에는 하루라도 더 있다가 올라 올께요. 배에 차를 싣고 바다위를 달리는 순간부터 부천에 도착한 밤 늦게까지 전화를 해 주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새삼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랑... 그것은 사랑이었다.

2002. 2. 16
부천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