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내 고향 청산도~

[고향] 섬에 갇히다.

자오나눔 2007. 1. 16. 13:39
     사방팔방이 바다에 둘려 싸여 있는 땅덩어리. 그곳을 우리는 섬이라고 부른다. 섬에 오르려면 언제나 배를 이용한다. 작은 똑딱선부터 커다란 여객선까지 여러 가지 배들이 섬과 육지를 오가며 사람과 물품을 수송하는 모습은 섬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기도 하다. 섬사람들은 바다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작은 물결부터 태풍에 이르기까지, 작은 모래알부터 커다란 암초까지 바다와 연관된 모든 것들은 섬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 있다. 하늘만 보고도 바다가 잔잔할 것인지 바람이 많이 불 것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섬사람들. 섬에서 태어나 객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철석거리는 파도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며, 명절이나 피서 철이면 더욱 섬을 그리곤 한다. 누가 고향에 다녀왔다면 고향 소식을 듣기위해 그를 찾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섬사람들은 언제나 바다와 함께 살아간다. 바다의 상태에 따라 섬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진다. 바다가 풍요로워야 섬사람들의 생활도 풍요로워진다. 적당한 바람이 불어 줘야 하고, 적당한 비가 내려줘야 하며, 적당한 태양이 바다에게 영양을 주어야 한다. 바다도 육지의 농사처럼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만 알찬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바다를 탓하지 않는다. 자연을 탓하지 않는다. 바다가 생명의 젖줄이기 때문이다. 바다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섬사람들이다. 섬사람들은 순박하다. 섬과 육지는 원활하게 연결되지 못한다. 젊은 사람들은 거의가 섬을 떠나기를 바랐다. 부모들조차도 섬 생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자식들을 육지로 유학을 보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어쩔 때는 파도에 생명을 담보로 잡혀가면서도 육지에 나간 자식들의 학자금을 벌기위해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섬사람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라다가 육지에 나가서 둥지를 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섬으로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보통 6-7시간을 차로 달려서 부부에 도착할 수 있고, 배를 타고도 45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지만 섬을 찾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섬들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제주도와 가깝게 있는 내 고향 청산도는 돌과 바람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내 고향에는 돌담이 많다. 얼기설기 얹어놓은 돌 틈은 거대한 태풍도 부드럽게 통과시키는 사랑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돌담이지만 구멍이 숭숭 뚫려서 담 건너편이 모두 보이는 담이지만 그 담이 묘한 힘이 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아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운 여름에 돌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더위를 식혀주는데 적당하다. 돌담의 매력이 있는 섬에는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다. 갯바위 낚시는 이미 유명세를 치를 정도로 많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각 마을마다 포구가 있기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언제나 싱싱한 생선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섬사람들은 순박하다. 객지에서 지인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사람들이다. 무엇인가 그 손님을 위해 준비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섬이다. 내 고향 청산도다. 서편제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지만 아직까지 우리 토종의 정이 흐르는 곳이라고 표현을 하고 싶다. 직접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친구는 우리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에 나갔다. 고기를 잡으러 나간 것이다. 친구는 어민후계자라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내세운다. 그래서 치어나 산란기의 고기는 절대로 잡지 않는 것을 삶의 지표로 정해 놓고 있는 멋쟁이다. 마침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어장을 나갈 수 없기에 횟감과 기타 생선이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비싸더라도 섬에 와서 자연산 생선을 먹고 가겠다는 피서객들의 마음과는 달리 모든 생선이 바닥나고 없다. 폭풍주의보로 인해 4일 동안 바다에 나가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친구는 우리를 위해 생선을 팔지 않고 물 칸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1년에 한번 찾아가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뭐가 반갑다고 그렇게 마음을 써 주는지…….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향이 이래서 좋다.    

     섬에서 바람은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큰 바람이 불면 파도가 높아지고 육지를 왕래하는 배는 가고 싶어도 입출항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육지나 섬에서 묶여 있게 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큰바람이 불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 섬이다. 이번 휴가 때도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아왔다. 사람이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막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계획대로 실행을 한다. 섬에 도착한 날부터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겨우 우리가 탔던 배만 섬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머지 배는 폭풍주의보 때문에 출항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제 도착한 상태라 괜찮은데 미리부터 와 있던 사람들은 안절부절 걱정이 태산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객선 입출항 관리소에 전화를 하거나, 혹시라도 배가 뜰까봐 차를 미리부터 부두에 주차를 해 놓는다. 여객선에 차를 싣고 가야하는데 그것도 순서대로 싣게 되어 있기에 차를 미리 부두에 순서대로 주차를 해 놓는 것이다. 언제 배가 뜰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부두로 몰리는 차량은 벌써 100대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내일도 비바람이 많이 불어서 출항이 어렵겠다고 하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만 알고 있으리라. 결국 섬에 갇힌 것이 되어 버렸다. 섬이 거대한 감옥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우리도 섬에 갇혔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마음을 넉넉하게 살아가는 법을 나도 모르게 섬으로부터 배워버렸는가 보다. 섬에 갇힌 것이 아니라 어머님 품안에 안겼다. 할 수 있다면 며칠 동안 편안하게 갇혀 있다가 나가고 싶은 정 많은 섬이다. 그곳이 내 고향 청산도이다. 아직도 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는 회색빛으로 찡그리고 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섬을 때리고 있다. 섬은 변함없이 사랑으로 파도의 투정을 받아주고 있다. 따지고 보니 모두 사랑이다. 아……. 사랑이여.

2002. 8. 8
靑山島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