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나눔의 문학

[수필] 아름다움이여 영원 하라.

자오나눔 2007. 1. 17. 10:36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빛이 창을 타고 내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축복을 내게 부어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여름에 모기나 날벌레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느라 방충망을 창틀에 부착해 놨었는데, 방충망의 색깔이 파란색이다. 방충망의 작은 구멍들을 통하여 세상이 보인다. 파란색깔의 방충망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은 더욱 파랗게 보인다. 아름다움이 보인다. 높은 하늘이 보이고, 푸른 잔디가 보이고, 씨앗이 땅에 떨어졌던 봉숭아가 다시 싹을 틔워서 꽃을 피운 모습도 보인다. 아직도 이름을 모르는 야생초는 하얀 솜털 같은 씨앗을 터트리고 있다. 마치 민들레의 씨앗처럼 산들바람에 내년을 준비하며 그렇게 퍼져 간다. 가겟집 할아버지가 가져다 주신 옥란은 어느새 꽃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대만 남아 있다. 그 곁엔 보아란 듯이 백합이 세 개의 열매를 달고 있다. 꽃을 세 개 피우더니 열매도 세 개다. 앙상하게 남았던 옥란의 대는 낫으로 베어지고 백합의 꽃대는 위풍당당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시 열매를 맺어야 대접을 받게되고 당당하게 되는가 보다.

      파란 방충망 사이로 굵은 소나무가 보인다. 날카로운 소나무 잎이지만 올 추석에는 송편을 만드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리라. 군대에서 100km 행군을 할 때면 소나무 잎을 뜯어서 군화에 넣고 행군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발에 물집이 덜 생겼었다. 소나무 줄기에는 살아온 세월만큼 굵은 껍질이 입혀져 있다. 소나무 껍질을 보며 고향의 어르신들을 생각했다. 나무껍질보다 더 거칠게 변해 있는 부모님들의 손바닥, 그리고 굵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들... 태풍 '매미'의 위력 앞에 망연자실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시 일어서 하루의 삶을 사신다. 돈으로 계산한다면 몇 푼 되지 않을 농작물이지만 봄부터 지금까지 들여온 정성이 아까워 다시 들녘으로 나가신다. 아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면 자식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련만 수십 년을 살아온 세월의 자존심이 부모님들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아마 내년에는 올해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분명히 웃을 날이 있으리라.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참 곱다. 하늘이 저렇게 높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해 보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높고 파란 하늘은 구경하지 못했던 것 같다. 높고 파란 하늘에 수백 마리의 하얀 양떼가 달려가고 있다. 참 아름다운 목장이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보며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비록 가슴에 커다란 멍을 간직하고 있다 하더라도 좋은 것, 아름다운 것만 보다보면 멍도 다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것, 아름다운 꽃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마음에 아름다움이 가득하게 차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쪽빛하늘 한 움큼 움켜쥐고 꼭 짜내면 파란 물이 하얀 구름에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날이다. 아... 아름다움이여 영원 하라.

      2003. 9. 23

'나와 너, 그리고 > 나눔의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억새꽃 2  (0) 2007.01.17
[시] 왜 사랑하느냐 묻지 마라  (0) 2007.01.17
[수필] 갑자기 떠오르는 얼굴  (0) 2007.01.17
[시] 편지  (0) 2007.01.17
[수필] 어려운 일도 쉽게 하는 사람  (0) 2007.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