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소록도] 67년을 소록도에서 살았소

자오나눔 2007. 1. 17. 12:35
      힘든 만큼 보람이 있었느냐고 물어 본다면 "감사할 뿐이라"고 대답을 하
   리라. 장애인 주택 마련 및 소록도 난방비 마련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은혜
   속에 마치고, 소록도 방문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먼저 소록도에 함께 방문
   할 사람들 모은다. 이리저리 연락하는데 모두가 사정이 여의치 않는가 보다.
   서서히 좁혀진 방문자  명단에는 우리 가족 세사람만 올라 있다.  운전을 하
   고 갈 아내, 책임자로 가는 나, 체험 학습 신청서를 받아 와 이틀 동안 학교
   대신 소록도에서 보내게 될 내 아들 준열. 이렇게 세사람으로 정해진다.

      소록도에 연락을  했더니 난방비 말고  난로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마련해 가고 싶은  것을 가져가는 것 보다, 그분들이 원하는  물품을 마련해
   가는 것이 마땅하기에 난로를 마련해 가기로 한다.  대리점과 쇼핑몰을 뒤지
   기 시작한다. 품질이 좋으면서  가격이 싼 물품을 구하려니 쉽지가 않다. 마
   침 며칠전에 인터넷 쇼핑몰 i3shop에서 매장을 한 개 분양 받았었다. 이름도
   자오마트라 정하고 기분이 들떠  있었지만 인터넷 쇼핑하는 방법을 잘 몰라
   공부하고 있던 중이었다. jao.mart.cc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 보니 물건이 좋
   고 싸다. 문제는 택배였다. 제 시간에 물건이  도착하지 않으면 낭패다. 본사
   에 연락을 해서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한다. 토요일까지 배달  해 드린다고
   하더니 목요일에 물건이 배달되어 왔다. 약속했던 날보다  이틀이나 빨리 도
   착했다. 기분이 좋다.  사무실에 도착한 로터리 히터를 살펴보니  아주 좋다.
   마음에 든다. 커다란  박스 4개가 사무실에 들어오니 사무실이  좁게 느껴진
   다. 소록도에  계시는 한센병 자들의  올 겨울이 무척 따뜻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신청자가 없어 우리 가족만  타고 가는 차에 난로
   를 모두 싣고  가기로 했는데 지인이 함께  가고 싶단다. 물품은 다른  차에
   싣고 가기로 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 경선 아우에게  연락을 하여 사정을 설
   명하고 녹동항까지 실어다 주라고 부탁을 하니 흔쾌히  승낙을 한다. 토요일
   에 올라와 물건을 차에 싣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출발  날이 되니 지인이 어
   쩔 수 없는 사정으로 소록도를 갈 수 없게  됐단다. 진즉 연락을 주었더라면
   경선 아우는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데...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그래도 감사한
   건 기쁨으로 봉사해 주는 아우가 있어서이다. 부산에서  황주선 집사님 일행
   이 온천수기를 가지고 함께 방문하고 싶단다. 녹동항에서  만나서 함께 들어
   가기로 약속을 한다. 전화 번호를 받아 적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께 다녀오겠노라 는 인사를  드린 후 출발을
   한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기로 한다. 서해 대교를 완성한지가 언제
   인데 아직도  구경을 못했으니 겸사겸사  해서 내려가기로 한다. 앞에  많은
   차들이 웅장한 서해 대교 아래서 주차하고 있다.  아마 구경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우리도 잠시 차를 갓 길로 주차한다. 장관이다.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차를 달린다.  도로 양쪽으로 보이는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자랑을  하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가. 일부러 돈주고 구경가는 세상에 우리는 봉사 가면서
   구경을 다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니 군
   산까지 2시간에 주파를 한다.  정해진 속도로 달려도 빠르다. 목포까지 완공
   이 되면 고향 가는 길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차안에서 부산 팀들
   께 전화를 하니 핸드폰이 꺼져 있다. 걱정이 되지만 어쩌랴 방법이 없다. 계
   속 달린다. 한참을 가는데 경선 아우가 전화를 해 온다. 난로를 싣고 일보고
   이제 출발하는 중이란다. 녹동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부지런히 달린다. 저녁
   시간이라 녹동항이  조용하다. 여관을 잡아  놓고 밖으로 나와 경선  아우를
   기다린다. 난로만 내려놓고 바로 올라갈 아우라 저녁이라도 먹여 보내야지...
   혹시 부산 팀이 오고 있는가  전화를 또 해보지만 여전히 핸드폰이 꺼져 있
   다. 경선 아우를  만나 저녁을 먹고 난로를 우리  차에 옮겨 싣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올라가는 경선 아우를 배웅하고 우리도 숙소로 들어간다.

      집을 떠나 잠을  자본지가 오래다. 소록도 봉사를 가도  성전에서 철야를
   해 왔기에 잠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자는  잠이지만 깊
   은 잠을 잘 수 없다. 설레임일까? 아니면 부산 팀이 걱정되어 일까... 새벽부
   터 일어나 텔레비전을 켠다.  유선 방송이라 아직도 방송하는 곳이 있다. 아
   내는 새벽 장을  보러 나간다. 자다 일어난 아들은 엄마가  안보이니 찾으러
   나간다고 난리다. 아들과  함께 씻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온다. 여관방 거울
   앞에 스킨과 로션이 나란히  서 있다. 갑자기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싶었다.
   특별한 날  아니면 스킨도 바르지  않는 스타일인데 갑자기 이상하다.  독한
   스킨 냄새는 과거에 명절  때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나오신 어르신들에게
   서 풍기던 그  냄새였다. 갑자기 드라마에서 보았던 빨간 양말  신동일이 생
   각난다. 그가 바르던 스킨과 로션이 이런 것이었을까? 별 생각을 다해 본다.
   모처럼 바른 스킨과  로션 냄새 덕분에 핀잔을 듣는다. 부산  팀이 도착했다
   는 전화가 왔다. 나가서 보니 포텐샤를 몰고 오신  집사님 일행이 우리를 반
   긴다. 바로 배를 타고 들어간다.

      변함없이 반겨 주는  소록도. 장로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절차를  미리 다
   받아 놨기에 바로  동생리까지 들어 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소록도의 경치
   는 우리를 말없이  반기고 있었다.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동성 교회
   로 들어간다. 하얀 벽에  주황색 지붕이 참 아름답게 보인다. 먼저 예배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기도를 한 뒤, 차에서 짐을 내린다. 짐을 내리고 마련해 간
   난방비까지 전달을 한다. 물론  간단한 기념사진도 찍었다. 왕뚜껑 사발면으
   로 아침을 해결한다.
      동네가 조용한 것 같다고 했더니 그 동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단다. 비
   가 내리고 있다.  갑자기 가라앉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산천은 의
   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는 싯구가 떠오른다. 연로하신 분들이라 올 때마다
   보이지 않는 얼굴이 많다. 아침 이슬과 같은 삶. 이게 우리들의 삶이 아니던
   가... 오후에는 다시 부산으로  가야 한다는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차를
   타고 소록도를 한바퀴  돌기로 한다.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헐리고  빈 공터
   만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집이라  을씨년스러웠는지 건물을 허물
   었다. 화장터를 가보니  빨간 벽돌로 지어져 있던 건물도 헐리고  작은 텃밭
   이 되어 있었다. 화장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11월 1일에 소천하신  어느 할
   머님의 뼛가루가 유골함에 담겨  연고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무상. 다시
   교도소를 가보고, 납골당,  중앙 공원에 있는 감금실, 검시실까지  구경을 시
   켜 드린다. 자세히 설명해  드린다고 해 보지만 어수룩한 설명일 뿐이다. 중
   앙 공원에 있는 많은 것들을 비를 맞으며 구경한다.

      어르신들께 심방을 갔다. 동네로 들어서니 웃음소리와  찬송 소리가 상쾌
   하게 들린다. 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님 네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대구에 자식들이  살고 있어 자주  찾아온다는 할머님의 표정이 무척  밝다.
   마루에서 홍시를 꺼내 오시며  먹으라고 하신다. 준열이가 신났다. 좋아하는
   홍시가 나오니 두  개를 금방 먹는다. 음료수까지 한잔씩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집으로 이동을 한다.
      소록도에 들어오신  지 67년째, 현재  83세인 최무경 할아버님은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작년에 82년만에  냉면을 드셔 봤다는 분이다. 왼쪽엔
   여전히 고무다리가 생명 없이  뻗어 있다. 어지러운 방안, 독한 약냄새가 처
   음 방문자들께는 견디기  힘들 것이다. 교회 집사님이 주신 봉투를  전해 드
   리며 건강하시라 안부를  전한다. 최집사님께 기도를 부탁하니  울먹이며 기
   도를 하신다. 처음 접해 본 삶. 그분들께는 충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
   상 살아가며 힘들  때 소록도에 사시는 한센병  자들의 모습이 새로운 힘을
   얻는데 자극제가 되리라.  시간이 제법 흘렀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부산 팀들이  떠날 시간이 됐다. 함께  녹동항으로 나가 점심 겸  저녁을
   먹기로 한다. 매운탕 한 개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화상 입어  흉측한 내 몸을 보더니 가져온 온천수기 한  대를 나
   에게 주며 잘 사용하여  큰 효과를 보시라고 하신다. 감사하다. 식사를 마치
   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다시 소록도행 배를 탄다. 단골(?)이라고 뱃
   삯도 깎아 주는 총각의 배려에 함박 웃음을 보낸다.
      소록도의 저녁은 일찍 시작된다.  밖에는 찬바람이 씽씽 불고 있다. 비온
   뒤라 더 추워진  날씨가 방안에 웅크리게 한다. 예배당에 가서  철야를 하려
   니 아직 난로가  피워지지 않은 마루 바닥이  너무 춥다. 바람은 엄청  불고
   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여인 천하를 보고 잠자리에 든다.
      새벽 3시에 아들까지 깨워서 예배당으로 간다. 아빠의  성화 덕분에 소록
   도에 오면 준열이는 새벽 예배를 참석한다. 추워하는  녀석에게 조끼를 벗어
   준다. 따뜻하게 해 주니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래도 그 모습이  좋다. 고슴
   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고 하지 않는가. 새벽 4시에 새벽 예배가 시작됐다.
   나에게 대표 기도를 시키시는 김명환 목사님. 그분의 뜨거운 열정이 부럽다.
   기도하는 목소리가  떨린다. 80여명이  새벽기도에 나오기도 했는데  이제는
   3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많이  소천하셨다는 증거다. 물론 몸이 아파
   서 나오지 못하는 분도 있지만... 수능을 보는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까지 마
   치고 대표 기도가 끝난다.  어김없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어르신들. 사
   시는 날까지 아프지 말고 찬송하며 사시다 하늘나라에 가시기를 기도한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서로 안부를 묻고, 악수하고 끌어안고  사랑을 나눈
   다. 어느 누구보다 뜨거운 정이 흐르고 있다. 얼마를 더 사시다 하늘 나라에
   가실지는 모르지만,  살아 있는 그날까지  우리 자오 나눔의 봉사는  계속될
   것이다. 아침을 사발면으로 해결하고 우리 가족은 차에 오르고 있었다. 소록
   도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사랑이 담긴 호박을 선물로 가득  싣고서... 2002년
   1월 1일에 다시 찾아 오겠노라 는 약속을 하고  소록도를 떠나고 있었다. 우
   리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고 계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뒤를 돌아보지 못한다. 눈물이 멈출 줄 모르기에...
      20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