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춘천] 내가 배워야 할 사랑...

자오나눔 2007. 1. 17. 13:12
     강원지역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에 걱정부터 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장애인 공동체인 춘천 나눔의 동산에 봉사를 가야하는데 길이 미끄러우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전날 다시 전화로 확인해 보니 도로에 차량이 잘 다니고 있단다. 자오쉼터에 미리 도착한 미룡님네 가족, 덕분에 자오쉼터가 사람 사는 것 같다. 큰샘물과 미룡님은 밤늦도록 생선을 다듬고 있다. 나눔의 동산에 가져갈 생선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우리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짐을 싣고 춘천을 향해 차를 달린다. 자오쉼터 지하수 파이프와 보일러 배관이 얼어서 물이 안나오는데, 시공자에게 전화로 고쳐 달라고 해 놓고 부지런히 달린다. 의암호로 통하는 길 중 두 곳이 공사중과 눈이 녹지 않아 전면 통제다. 오던 길을 되돌아 국도로 겨우 의암호 길을 들어선다. 의암호 상류에는 강이 꽁꽁 얼었는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얼음을 깨고 빙어 낚시를 하고 있다. 더운 여름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평일인데도 도로에 차가 양쪽으로 줄을 서서 주차되어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가.

     나눔의 동산에 도착하니 어느 여자아이가 쪼르르 오더니 "할아버지~~"반갑게 부른다. 노란 옷을 입은 미연이다. 지금 나이 6살. 어머니가 아빠의 학대에 못 이겨 미연이를 두고 가출하고, 아빠는 미연이를 원수 보듯 하며 심한 학대를 하여 남자만 보면 자지러지게 울면서 까무러치곤 했단다. 그래서 봉사자 중에 남자만 오면 숨느라 정신이 없었고, 남자가 손이라도 잡으려면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울어대던 아이, 여자 봉사자하고도 친하지 않던 아이, 같은 또래의 아이에게조차 피해의식을 느끼던 아이, 나눔의 동산 가족들 중에 할머님들에게만 정을 주던 아이... 세월이 흐르며 할아버지들께는 마음을 열지만 다른 남자들에게는 마음을 열지 못하던 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었다. 도착하자마자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예정대로 큰샘물님과 미룡님은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든다. 마침 학생들과 간사들은 얼음썰매를 타러 갔단다. 함께 일할 사람이 없어 원장님이 팔을 걷어 부치고 일손을 돕는다. 며칠 전에 생일이었다는 어느 장애인은 오늘 점심때 잡채를 해 준다니까 생일 상 받는다고 손뼉치며 좋아한다. 정신박약인 그는 어릴 때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해 미혼모가 되었고, 아이는 시설로 보내지고 그는 나눔의 동산으로 왔었다는... 그녀가 저렇게 좋아한다. 우리들도 가끔은 소박한 것에서 참 기쁨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생각을 해 본다.

     나눔의 동산에는 사랑이 있다. 가족과 같은 끈끈한 사랑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이라도 서로 의지하고 챙겨주는 사랑은 안다. 몸이 불편해 걷기가 힘든 할머님은 업어서 식당으로 이동을 시키고, 걸을 수 있는 할머님께는 팔 부축을 해 줄 줄 아는 사랑이 있다. 비장애인이야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자기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장애인들이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칭찬 받기에 마땅하다. 세월의 면류관을 쓰신 할머님이 나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신다. 집 짓는 것은 잘 되어 가느냐고 안부를 물으신다. 자오쉼터를 말하는 것이다. 자꾸 자오쉼터에 와 보고 싶으시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우리에게 정이 많이 들었는가 보다. 한 분, 한 분을 보면서 자오쉼터에서 함께 살아갈 가족들을 그려본다. 자오쉼터에는 가족 공동체처럼 만들어 살아가겠다는 구상도 해 본다. 어느 할머님 두 분이 나눔의 동산을 찾아와 살게 해 달라고 면담을 신청하는 모습을 본다. 사연들이 딱하다. 불쌍한 어르신들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는 김재숙 원장님의 사랑을 만난다. 참 사랑이다. 내가 배워야 할 부분들이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도 못해드리고 바로 철수를 해야하는 우리들. 날씨가 더 추워진다는데 어서 자오쉼터에 돌아가 배관을 녹여야 한다. 이번에 배관을 녹이지 못하면 아이들과 도 며칠동안 추위에 떨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았다. 저 멀리 먹구름 한 조각이 보인다. 저 먹구름 한 조각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2003. 3. 17
자오쉼터에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