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백합 양로원] 그래도 행복한 사람들...

자오나눔 2007. 1. 17. 13:44
     토요일 오후.
     세상을 마음껏 축복하시고, 그 축복을 우리들은 마음껏 누리는 날이라 우리들은 토요일을 가정의 날이라 부른다.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주신 복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가정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다른 토요일과는 다르게 날씨가 좋다. 일기예보는 이런 저런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현실에는 참으로 좋은 날씨다.

     며칠 전에 후원 받은 쌀을 반으로 나눠서 차에 실었다. 나누는 자에겐 반드시 넉넉하게 돌아온다는 진리를 경험하며 살아온 삶이라 부담이 없다. 자오쉼터와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백합 양로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어제 사전 답사를 했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할머님들과 구정숙 목사님, 방금 점심을 끝냈는데 상추쌈 해서 밥을 먹으려느냐 묻는다. 그냥 라면이나 한 개 끓여 달라고 했더니 금방 끓여 주신다. 파김치에 라면 한 그릇 맛있게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한 달에 한번만 먹어도 살 수 있다던 우주식량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한 달에 한번만 먹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해 보니 재미있다.

     마포 조각을 바늘로 이어가며 여름 이불을 만들고 계시는 할머님들, 알고 보니 당신들이 덮으실 이불이 아니라 목사님 고생하신다고 손수 만들어 목사님 사용하게 하신다며 바느질을 하고 계시는데 할머님들의 표정이 참 밝다. 72살 잡수신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40kg 쌀자루를 가볍게 들어 옮기신다. 공기 좋은 곳에서 사시니까 그런 건지 아직 청춘이시다. 작은 텃밭에는 상추, 쑥갓, 씀바귀, 아욱 등, 가족들 먹을 푸성귀가 잘 자라고 있었다. 특별하게 해 드릴 일이 없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도 많고 사연도 많았다. 젊어서 고생하여 살만 하니까 찾아온 고난들, 여러 가지 사건들... 결국 몸 버리고 돈 버리고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던 분들도 계셨다.
     찾아온 손님이 너무나 반가워 텃밭에 있는 푸성귀들을 뜯어다 비닐봉지에 담아 주신다. 내가 좋아한다고 파김치도 한 접시 담아 주시고...,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게 정이 아니겠는가. 당신들의 처지에서는 최고로 대접을 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있는 것 나눠먹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는 어느 할머님의 인사가 정겹다.

     살아가는 것, 산다는 것이 특별한 것이겠는가.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소중한 마음들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사람 살아가는 진정한 재미가 아니겠는가. 많아서 나누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작아도, 부족해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참 많다.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냉장고에 빈자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것이 생겼어도 상하게 되는 법, 내게 있는 것 조금만이라도 나눠서 빈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더 좋은 것이 빈자리로 들어오게 된다고... 부족해도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그들의 마음에 주님이 계셨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찾아뵙자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와 약속을 한다. 토요일 오후가 기분 좋게 저물어 간다.

     2003.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