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두 손에 오색 가을을 담아버린 억새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백합 양로원을 향해 차를 달린다. 평소 이웃 섬기기를 좋아하는 헤어드레서 원장님과 아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가는 길이다. 양로원을 향해 가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길가엔 감나무가 주렁주렁 감을 달고 지나는 길손을 유혹한다. 벼를 베어낸 들녘에는 가끔씩 불어주는 가을 바람에 검불이 이리 저리 날아다니고, 참새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허수할아버지와 허수할머니는 그래도 좋은지 활짝 웃고 계신다.
양로원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물품들을 내려놓는다. 쌀이며 냉면이며, 반찬이며, 과일이며... 얼마간이라도 잡술 수 있는 분량이다. 도착하자마자 팔을 걷어 부치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아내와 여시님. 그 사이 나는 양로원의 컴퓨터를 점검해 주고, 이런 저런 문서 작성을 해 드린다. 방에까지 고소한 냄새가 풍겨 온다. 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환갑이 다 되어 가는 아가씨 목사님이다. 가끔 짓궂은 농담을 건네도 웃으며 받아주는 분이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사는 살림이 풍족할 리는 없다. 엘리야의 까마귀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살아가는 분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할머님 한 분이 식사를 안하신단다. 92살 잡수신 치매 걸린 할머님인데 고기만 찾으신 단다.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 드려도 그릇을 밀어내며 식사를 안하신단다. 고기를 유난히 좋아하시는 할머님은 얼마 전에 누군가 불고기를 만들어 방문하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분들 대신 우리가 왔지 않느냐며 웃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었다.
약속.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 시설에 봉사를 가서 "다음달에 또 올게요~"라고 했다면, 그 시설에 사는 분들은 한달 내내 그 사람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내게는 쉽게 생각할 문제일지라도 상대에게는 소중함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어느새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다. 아내와 여시님이 콤비가 되어 금방 한 상 차렸다. 식사 기도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한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량만 잡숴야 하는데 계속 잡수시는 할머님. 대변 조절이 안되시기에 식사 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목사님은 참 난감하신가 보다. 고기 많이 있으니 두었다 저녁에 또 잡수라고 하는 말로 대신한다. 헤어드레서 미용실 원장인 여시님. 다음달부터 양로원의 이발을 책임지고 해 주시기로 한다. 양로원 어르신들과 어느새 마음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버린 여시님.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며칠동안 먹을 반찬까지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주는 아내. 섬기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작은 감동을 받는다. 내가 평생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라고 했다. 보라색 들국화가 보기 좋다. 두 가지를 꺾어 아내와 여시님께 한가지씩 드린다. 하얀 억새꽃의 유혹에 못 이겨 억새 밭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양로원 가는 길에는 가을이 있다. 양로원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저절로 시 한편이 나온다. 오색 가을을 담아 버린 그대는 누구.
2003. 11. 7
양로원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물품들을 내려놓는다. 쌀이며 냉면이며, 반찬이며, 과일이며... 얼마간이라도 잡술 수 있는 분량이다. 도착하자마자 팔을 걷어 부치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아내와 여시님. 그 사이 나는 양로원의 컴퓨터를 점검해 주고, 이런 저런 문서 작성을 해 드린다. 방에까지 고소한 냄새가 풍겨 온다. 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환갑이 다 되어 가는 아가씨 목사님이다. 가끔 짓궂은 농담을 건네도 웃으며 받아주는 분이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사는 살림이 풍족할 리는 없다. 엘리야의 까마귀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살아가는 분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할머님 한 분이 식사를 안하신단다. 92살 잡수신 치매 걸린 할머님인데 고기만 찾으신 단다. 맛있는 된장국을 끓여 드려도 그릇을 밀어내며 식사를 안하신단다. 고기를 유난히 좋아하시는 할머님은 얼마 전에 누군가 불고기를 만들어 방문하겠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분들 대신 우리가 왔지 않느냐며 웃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었다.
약속.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느 시설에 봉사를 가서 "다음달에 또 올게요~"라고 했다면, 그 시설에 사는 분들은 한달 내내 그 사람들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내게는 쉽게 생각할 문제일지라도 상대에게는 소중함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어느새 푸짐한 식탁이 차려졌다. 아내와 여시님이 콤비가 되어 금방 한 상 차렸다. 식사 기도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한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량만 잡숴야 하는데 계속 잡수시는 할머님. 대변 조절이 안되시기에 식사 량을 조절해야 하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목사님은 참 난감하신가 보다. 고기 많이 있으니 두었다 저녁에 또 잡수라고 하는 말로 대신한다. 헤어드레서 미용실 원장인 여시님. 다음달부터 양로원의 이발을 책임지고 해 주시기로 한다. 양로원 어르신들과 어느새 마음의 거리가 무척 가까워버린 여시님.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며칠동안 먹을 반찬까지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주는 아내. 섬기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작은 감동을 받는다. 내가 평생 사랑해야 할 사람이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차를 세우라고 했다. 보라색 들국화가 보기 좋다. 두 가지를 꺾어 아내와 여시님께 한가지씩 드린다. 하얀 억새꽃의 유혹에 못 이겨 억새 밭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양로원 가는 길에는 가을이 있다. 양로원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다. 저절로 시 한편이 나온다. 오색 가을을 담아 버린 그대는 누구.
2003.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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