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년째로 접어드는 소록도 봉사. 1년에 네 번을 찾아가지만 신정 때 가는 일정이 제일 바쁘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출발을 해야 하기에 더 분주하다. 신정 때 어르신들께 떡국 한 그릇 대접하는 게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하는 이유는 있다. 떡국 떡을 1,000명분 마련해 갈 정도니 남모를 수고를 해야 할거라는 것은 기정 사실. 그런데 함께 참여할 봉사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나도 가족과 함께 일출도 보러가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해야 할 일이 우선이라는 것은 안다. 봉사자를 모집한다. 소록도 어르신들께 봉사를 가면서 경비가 부족하기에 봉사자들에게 참가비를 받아야 한다. 그 참가비를 모아서 봉사 경비로 사용하려니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후원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숨겨진 일군들의 도움이 모이면서 차근차근 봉사 준비가 된다.
이동을 못하시는 어르신들이 상상외로 많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분들께 떡국을 끓여서 배달을 하다보면 퍼져버린 떡국이 참 볼품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취사를 할 수 있기에 육수만 데워서 떡을 넣고 끓여 드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기로 한다. 공동 취사를 하는 마을에는 공동으로 떡국만 끓여 드시면 될 수 있도록 반찬부터 떡, 육수까지 한꺼번에 가져다 드리기로 하고 준비를 한다. 모든 음식을 소록도에서 만들어야 하기에 음식 재료가 엄청 많다. 그만큼 봉사자들의 손길도 바쁘리라.
회원들께 공지를 내리고 동참을 바래 본다. 처음엔 우리 가족만 갈 것 같았는데 출발 당일 점검하니 30여명의 봉사자가 모였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사람이 판단할 수 있으랴. 봉사자들과 서로 연락을 하여 각 집결지에서 만나기로 한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출발을 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시작, 설렘, 기쁨, 희망,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화성에서는 차가 이미 출발을 하였는데 부천에서는 아직 차가 출발하지 않았단다.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오려고 늦는다고... 새해 첫 기도를 못 받게 하면 안 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소록도에 가서 해야 할 이런 저런 구상을 하며 의견을 나누다 보니 금방 지나간다.
화성휴게소에서 부천 팀을 기다리다 시간이 늦어 먼저 출발하여 대전을 지나 인삼랜드에서 대전 팀과 합류한다. 다시 차를 달려 사천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뒤 따라 오던 차가 지나쳐 버렸다. 서진주에서 진주 팀과 거제도 팀을 태우고 다시 사천휴게소로 들어오는 2호차. 우여곡절 끝에 합류하여 소록도를 향해 달린다. 벌교를 지나 고흥에 접어들었는데 전날 미리 출발한 여시님이 전화를 주셨다. 여시님 일행은 10명,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간다고 차에 타라고 해서 부지런히 달려오다가 중간에서 소록도 봉사를 간다고 하니, 차에 타고 있던 일행들이 기절초풍할 일. 아무튼 그렇게 합류하여 소록도에 도착을 한다. 먼저 도착한 팀은 예배당에 들어가 간단하게 기도를 한 후 차에서 물품을 내려 제 위치에 쌓아 놓는다. 비닐 장갑, 종이컵부터, 한우고기, 떡, 과일 음료까지 사랑과 정성이 깃들지 않는 것이 없다.
첫날은 동생리 주민들께만 떡국을 대접하기로 했다. 여자 남자가 할 일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모두가 자기의 자리를 잡는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분들은 부엌에서, 예배당에서 일을 하는 분들은 예배당에서, 밖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한다. 주방에 들어가 보니 50인용 밥솥 4개가 모두 제대로 점화가 안되고 있다. 이런 일에는 아무래도 남자가 낫다. 메니아님과 기둥님 낑낑대더니 화력 좋게 고쳐 놓는다. 마을에 방송을 하여 식사하시러 오라고 하시니 어르신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예배당에 성탄트리를 철거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몸이 불편하여 걷기 힘든 분은 차로 모셔오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고 있는 봉사자들. 그러고 보니 아침도 먹지 못한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음식준비를 하다보니 끼니를 건넜다. 새해 첫날 아침을 느끼지도 못하고 금식을 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다리가 없는 할머님을 휠체어에 태우고 모시고 오는 봉사자들, 익숙하지 않지만 한센병자들의 손을 잡아 상 앞으로 인도하는 봉사자들, 푸짐하게 차려진 상에 혹시 빠진 게 없는지 점검을 하면서 열심히 떡국을 나르는 봉사자들, 시키지도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서 잘 해 주신다. 부엌에서는 열심히 떡국을 끓여 내오고...
눈알이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운 장로님은 이빨까지도 덜렁거리며 침이 질질 흐르고 있다. 본인은 열심히 수건으로 침을 훔쳐내면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 곁에 앉아서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아들래미의 안부를 물으신다. "양집사님 준열이는 잘 크고 있지요? 매일 준열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5년전에 아들래미 기도 부탁을 했었다. 녀석의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빠가 지체1급장애인인데 하나 있는 아들까지 청각장애인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힘들어 기도 부탁을 드렸었다. 그 후 5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기도를 해 주셨다니... 나의 나됨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요, 그분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셨기 때문이리라. 자리에서 일어나 이런 저런 일들을 챙기고 있다가 다시 장로님 앞으로 가 보니 어느 여자 분이 장로님께 떡국을 떠 먹이고 있다. 메니아님 아내였다.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떡국 대접을 마치자 바로 다음 준비를 하시는 봉사자들. 이튿날에는 소록도 전체 주민께 대접을 해야 한다. 공동 취사는 공동 취사대로, 개인 취사는 개인취사대로... 싱싱한 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부침개를 부치는 일을 누가 여성 전유물이라고 했던가? 여자들이 부족하니 남자들이 부침개를 만들고 있다. 무채를 열심히 썰고 있는 여시님 남편 남운규님, 정동하님, 메니아님의 칼솜씨는 도마 위에서 빛을 본다.
다른 일정 때문에 철수를 하지만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여시님 일행과 김신자 권사님. 그사이 김치를 썰고 있는 여자 분들, 그것을 들고 가서 비닐 포장을 하고 있는 분들. 녹동이 고향이라 더 적극적으로 수고를 하고 있는 윤경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번 봉사단에는 교사들이 세분 참여했다. 그분들이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당신들의 체험을 산 교육으로 보여 주리라 믿는다. 저녁 배로 미용님이 들어온다. 아이들과 기차를 타고 내려 왔단다.
신정때 소록도 봉사를 가면 별미를 맛볼 수 있다. 밤에 불을 피우고 석화를 구워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서로에게 권하는 맛은 별미중의 별미요, 멋진 추억거리가 된다.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와 나머지 작업을 한다. 음료와 과일을 한 봉지로, 김치 따로, 반찬 도시락에는 잡채, 무생채, 부침개가 담기고, 떡국 떡을 따로 포장하고, 양지를 이용해 잘 우려낸 육수를 비닐봉투에 담아 다시 그릇에 넣는다. 김, 고기, 계란지단 등 고명을 따로 넣고, 큰 봉투에 차곡차곡 담는다. 이렇게 하면 1인분이다. 현재 소록도 한센병자들이 727명이었으니 넉넉하게 800명분을 만들었다. 힘들만 하면 색소폰 연주를 해주는 우영탁님, 색소폰 연주에 맞춰 찬양을 부르는 엄지공주님, 어느새 포장 작업이 다 끝났다. 밤을 샐 거라 예상을 했는데...
부엌에 나가보니 아내 혼자 일을 하고 있다. 뭐하느냐 물으니 내일 동생리 주민들께 만두 국을 끓여 드리려고 만두 속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다. "당신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고마워..." 쑥스러운 칭찬을 해 본다. 다시 예배당에 모여 앉았다. 서로의 소감도 들어 보고 서로의 마음도 여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고 축복을 해 준다. 경건의 시간을 마치고 개인 기도시간을 갖도록 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분은 남아서 새벽예배 때까지 개인 기도를 하도록 했다. 2시30분이 되자 어르신들이 새벽기도를 나오신다. 누구를 위하여...
소록도 어르신들과 드리는 새벽예배는 은혜다. 환갑이 넘으신 분들로 구성된 성가대는 새벽예배 때는 더 아름답게 찬양을 드린다. 특송을 하는 우리 봉사자들, 이어서 색소폰 연주가 은혜롭게 이어진다. 기둥님의 대표기도, 겨자씨 목사님의 말씀으로 이어지며 감사헌금 광고까지 마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점심을 준비한다고 하니 감사하다는 화답이 나온다. 새벽예배가 5시에 끝났다. 어둡다. 잠시 휴식을 하도록 하고 나도 잠시 눕는다. 깨워서 아침 먹게 하라는 아내의 소리를 듣고 일어나 방에 누워있는 봉사자들을 깨우려고 문을 열다 넘어져 몇 군데 다쳤다. 방에 앉아 기도를 하다 눕다 어쩔 줄 모른다. 아내가 들어와 팔을 주물러 주고 다리를 주물러 준다. '정말 평생 내가 사랑해야 할 내 사람이다.'
공동 취사를 하는 마을은 9시쯤 점심 준비를 해서 전해 드리고, 개인 취사하는 분들은 겨자씨 목사님을 필두로 장로님의 안내를 받아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지난밤에 만들어 두었던 도시락이 배달된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모두에게 느낌은 있었으리라. 건강하시라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기도 부탁한다고... 짧은 만남 긴 여운이 있는 시간들이다. 도시락 배달을 마치면 소록도 견학까지 시켜 드리라고 겨자씨 목사님께 일임을 했는데 아주 멋지게 가이드를 해 주셨는가 보다. 함께 다녀온 분들이 모두 감사해 한다. 동생리 어르신들게 만두 국을 대접하고 있는데 소록도가 고향인 무화과님이 도착했다. 반가운 해후.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소록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단체 사진 한 장 찍고, 이젠 정이 너무 들어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드는 어르신들의 배웅을 받으며 소록도를 나온다. "또 울어요... 현충일 때 올 테니까 울지 마세요~" 뭉텅이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점점 멀리 보인다.
나는 소록도를 35번째 방문하여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그때마다 소록도 어르신들을 통하여 느낀 것, '아픈 것도 감사의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소록도 봉사를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천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있다. "봉사는 중독되고 행복은 전염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이번에 소록도 봉사에 참여한 분들이 크게 한 몫을 하게 하소서." 어쩌면 이미 봉사는 중독되고 행복은 전염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정을 주관하시고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2004. 1.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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