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중독 행복전염/봉사 댕겨 왔슈~

[백합] 겨울과 봄 사이에...

자오나눔 2007. 1. 17. 14:17
언제 그렇게 추웠나 할 정도로 포근한 날이다. 봄이 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겨우내 먹을 것이 부족하여 고생하다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봄나물을 캐서 연명해야 했던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는 할머님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백합 양로원을 찾아갈 때마다 살갑게 대해 주시는 노처녀 목사님과 할머님들, 그리고 청일점인 할아버지 한 분. 그들과는 스스럼없는 가족처럼 되어 있는 것 같다.

혹시 함께 봉사갈 사람이라도 연락이 올까 기다리다 차에 오른다. 아침부터 아내는 차에다 양로원에 가져갈 물품들을 싣는다. 사람이 살면서 먹을 것만 넉넉해도 다른 일을 하는데 걱정이 없다고 한다. 쉼터 식구들 먹을 양식과 부식들을 일부 나눠서 양로원으로 가져가려고 미리 준비를 해 놨는가 보다. 자오쉼터 살림하랴, 남편 따라 봉사 다니랴, 부모님 섬기랴... 항상 바쁜 아내는 아플 틈도 없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하는 사역이니 참 감사하다.

차를 달려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든다. 양지바른 쪽에는 벌써 파란 싹이 돋아나고 있다.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봄이야 봄" 아직 2월이지만 음력으로는 정월이 아니던가. 절기로는 아직 겨울인데 봄은 우리들 마음에 벌써 찾아왔는가 보다. 산 속 길로 들어서니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여기는 아직 겨울이다. 조심스럽게 차를 운전하는 아내가 한마디한다. "겨울과 봄 사이를 우리는 지나고 있네?" 겨울과 봄 사이를 지나는 우리라... 참 아름다운 표현이라며 칭찬을 해 주니 기분 좋아한다. 부부가 살면서 서로에게 칭찬해 주며 살아온 날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미안할 따름이다. 더 많이 칭찬해 줘야지...

산 속 길을 벗어나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지나 좁은 길을 한참 가니 양로원이 보인다. 조용하게 자리잡은 단독주택이다. 차 소리가 나니 할머님 한 분이 문을 열어 보신다. 안으로 들어가니 점심을 준비하고 계신다. 오늘은 할머님 한 분이 요리를 해 보시겠다며 팔을 걷어 부치셨단다.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백합양로원. 아내는 할머님들과 점심 준비를 하고 나는 목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총 11명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 기초생활 수급자는 한 분뿐이란다. 호적이 없는 분도 계시고 당신이 누군 줄도 모르는 분들도 계시단다. 자식에게 버림받아 길거리를 헤매다가 들어 온 분도 계신다. 동사무소에 가서 호적도 만들고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도 하시라고 방법을 알려 드린다. 마침 쌀이 떨어졌는데 이렇게 알고 쌀을 가져왔다며 감사해 하신다. 할머님들이 생선을 좋아하시는데 생선까지 사온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까하며 기도하시겠다고 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한잔 마시며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장단을 맞춰 드리면 신명을 내신다. 봄인데 씨앗 뿌릴 이야기며, 나물 캐러 갈 이야기며 끝이 없다.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더 놀다 저녁까지 해 먹고 가라는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올랐다.

마을과도 외딴 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님들. 그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은 언제나 다 들어 드릴 수 있을까... 봄인데...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2004.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