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문학의 이해

부사를 알면 글맛을...(중)

자오나눔 2007. 1. 17. 14:55
2. 격에 맞는 부사어

부사어는 서술어를 꾸미는 역할을 하지만 아무 서술어나 막 꾸미지는 않는다. 예컨대 ‘매우 아름답다’는 표현은 할 수 있지만 ‘잘 아름답다’는 표현은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같은 오류를 범하곤 한다.

○ “나 어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했어. 그랬더니 속도가 너무 빨라진 거 있지. 기분이 참 좋더라”

밑줄 친 부사어 ‘너무’는 사전적으로 ‘정도에 지나치게’라는 뜻이다. 따라서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라는 말에는 ‘바라던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빨라져서 불만족’이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빠른 게 생명이다. 빠르다고 불평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너무’는 내용에 어울리는 부사어가 아니다. ‘속도가 무척(혹은 아주, 굉장히) 빨라졌다’고 해야 한다. 비슷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 행여 이번 파업이 타사의 파업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행여’는 ‘행여 임이 오시려나’ 따위처럼 ‘다행히’ 또는 ‘바라건대’의 뜻을 지닌 말로 파업의 나쁜 결과와는 어울릴 수 없다. 여기서는 ‘혹여’나 ‘혹시’가 적당하다)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많이 안다(‘제일’은 최상급에 쓰인다. 여기서는 비교급 문장이므로 ‘제일’ 대신 ‘더’로 해야 바르다)

○ 비록 내가 성공했지만 남에게 자랑하지는 않는다. (‘비록’은 부정의 의미를 지닌 서술어와 잘 어울린다. 예컨대 ‘비록 이겼지만’보다는 ‘비록 졌지만’이 자연스럽다. 여기서는 ‘비록’을 생략하는 게 낫다)

○ 딱히 꼬집어 말한다면 그는 사기꾼이다(딱히→꼭)

○ 일이 그다지 힘들 줄은 미처 몰랐다(그다지→그토록)

○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다(도무지→도저히)

○하필이면 더럽고 쓸데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입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데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었나 해서입니다.
※‘하필이면’은 어찌하여 꼭, 공교롭게도 꼭의 뜻이다. 그 ‘하필이면’이 여기서는 ‘굳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물론 ‘기차편을 버리고 하필 비행장을 고른 것은 모험심에서 나온 것이었다.’처럼 쓰이는 경우도 있긴 하나, 여기서는 아무래도 고침 문장처럼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3. 부사어와 어미의 어울림
어떤 부사어는 뒤에 오는 서술어의 어미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이 부사어와 어미는 문장 내에서 의미상 긴밀한 연결력을 지닌다. 이들은 한 묶음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양보의 구문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묶음말의 한쪽 단어를 생략할 수도 있다. 이들의 짝을 맞추지 않으면 글이 어색하고 논리가 어그러지는 결과를 낳는다.

○ 아무리 그가 좋기로 간까지 빼주랴.

○ 내일은 아무리 비가 올지라도 반드시 떠나겠다.

○ 그가 아무리 재주가 좋다지만 하늘을 날 수야 있겠는가.

○ 아무리 노력하여도 성공할 수 없다.

○? 아무리 튼튼한 사람들도 감기에 걸린다.

이상에서 보듯 부사어 ‘아무리’ 는 ‘…기로(서니)’ ‘…하다지만’ ‘…하여도’ ‘…일지라도’ ‘…라지만’ ‘…라도’ 등과 짝을 이룬다. ‘…기로(서니)’와 결합할 때는 반어형을 수반하고, ‘…하다지만’은 부정형을 수반한다. 이같은 결합을 무시하면 문장 흐름이 어색하다. 위의 마지막 예문이 그같은 경우라 하겠다.

한 가지 더 예를 들면 부사어 ‘가뜩이나’는 ‘…한데/…한 판에’ 등과 자주 짝을 이룬다. 또 부정의 의미가 강한 단어를 피수식어로 삼는다.

○ 가뜩이나 모자란데 남을 주라니.

○ 가뜩이나 어려운 판에 남의 식구까지 떠맡았으니.

그런데 아래 문장처럼 부사어 ‘가뜩이나’가 어미와의 짝을 외면하면 문장이 어그러진다.

○? 창고의 곡식이 가뜩이나 모자랐다(가뜩이나→턱없이)

○? 창고의 곡식이 가뜩이나 풍부한데 또 쌀을 사다니(풍부한데→남아도는데)

부사어와 어미가 짝이 이루지 못해 문장이 어색한 예를 몇가지 들어 보자.

○ 그저 한번 봐주십시오(→한번만)

○ 딱 한번 봐주십시오(→한번만)

○ 만일 비가 와도 나는 거기에 가겠다(만일→설사, ‘만일’은 ‘…라면’과 주로 어울린다)

○ 청소년 폭력은 집근처, 학원가보다 학교 안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난다.(가장→더)

○ 어젯밤에 어찌나 더워서 한숨도 못잤다(더웠던지)

○ 그의 마음이야 오죽 답답했다(답답하겠는가, 답답하랴)

○ 나는 거기에 가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싫어한다(싫어하기 때문이다)

○ 하마터면 넘어지겠다(넘어질 뻔했다, 혹은 잘못하면 넘어지겠다)

○ 하마터면 넘어질 수도 있다(→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다)

○ 하찮은 동물도 제 새끼를 사랑하는데 하물며 인간이다(인간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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