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 그리고/문학의 이해

주어가 둘이면 술어도 둘

자오나눔 2007. 1. 17. 14:57
건망증이 있는 사람은 글을 못쓴다?
글쓰기와 건망증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듯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대화 중 한참 열변을 토하다 갑자기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말을 꺼냈지?" 라고 할 때가 있다. 이는 건망증 환자의 구변(口辯)이다. 그럴진대 건망증 환자의 문변(文辯)도 없을 리 없다.


말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도 우리는 앞에 무슨 말을 했는가 염두에 두면서 뒤를 이어간다. 그런데 글을 복잡하게 엮어가다 보면 앞의 글을 깜박 잊은 채 뒤를 채우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문맥이 꼬여 있거나 들어가야 할 말이 빠지게 된다. 가장 일반적인 오류는 주어가 둘인데 술어는 하나인 경우이다. 긴 문장에는 대개 주어가 둘 이상이다. 전체주어인 대주어가 있고, 부분주어인 소주어가 있다. 이 때 각각의 주어는 대응되는 술어를 따로 갖는다. 다시 말하면, 일부 예외는 있지만, 주어가 둘이면 술어도 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K씨가 직위를 이용해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다.

이 문장은 대주어인 '검찰'에 대응하는 술어가 없다. 소주어 'K씨'의 범죄 혐의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대주어가 있는 것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억지로 술어를 찾아 맞추자면 '검찰은 …혐의다'가 되는데, 그럴 경우 '검찰이 혐의를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바로잡아야 한다.

☞검찰은 K씨가 직위를 이용해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를 잡고 수사중이다.

이와는 반대로 술어는 있는데 대응되는 주어가 없는 경우도 있다.

○ 우리 회사는 교육을 받기 위해 따로 집합할 필요 없이 근무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화면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 가상교육기관인 사이버 캠퍼스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루어질 수 있도록'의 주체가 빠졌다.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으로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물론 '교육'이라는 말이 앞에 나와 있으므로 같은 단어를 중복시키지 않으려고 뒤에서는 생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복의 회피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법상 필요한 단어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넣어주어야 한다.
아래 글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다. 둘째 문장에서 빠진 주어를 찾아보시라.

한나라당 소속의원 등 10여명이 97년 대선자금으로 국세청을 동원해 모금한 '세풍(稅風) 자금'중 10억원대의 돈을 유용했거나 보관-은닉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의도 당사에서 총재비서실장 주재로 긴급회의를 소집, "한나라당에 대한 음해 파괴공작"이라고 규정한 뒤 이 같은 주장을 보도한 신문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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