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사람들은 만남과 대화를 통하여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 온몸으로 표현하여 소통을 하거나 대화를 통하여 소통을 한다. 바벨탑 사건 때 구음이 하나였지만 사람들이 하는 짓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매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하여 화합이 아닌 분열을 초래하게 했던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도 올 6월에 몽골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비전트립이란 명목으로 다녀왔지만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왔던 일정이었다. 출국을 하면서 몽골비행기를 이용했는데, 우리 일행은 비행기를 탄 순간부터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승무원들 모두가 영어도 아닌 몽골어로 대화를 하고, 승객의 질문에도 몽골어로 대답을 하니 당연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참으로 답답했었고, 다시 한 번 바벨탑 사건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몽골어를 알고 있었거나 승무원이 한국어나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의사소통의 방법이 난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영적인 대화인 기도이다.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처럼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어린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으앙~ 하고 울기만 해도 엄마는 아이가 배가 고픈지, 아픈지, 용변을 봤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기도의 방법을 몰라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설명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을 해야지, 으앙~ 하고 울고만 있다면 그게 제대로 된 상태인가? 아이는 아이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의사 표현을 하듯이, 믿음의 분량이 성장하는 단계대로 하나님과의 대화 방법이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두란노 출판사에서 앤드류 머레이가 지은 ‘응답받는 기도’를 펴냈는데, 참 많은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책속으로
부흥의 선구자 앤드류 머레이가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을 공개한다. 기도의 무한한 힘을 열방 중에 떨친 그의 기도법은 단순하고 쉽다.
첫째,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의지하며 밤낮으로 부르짖는 것이다. 온 열방이 구원을 얻을 때까지, 개인적인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자신은 물론 하나님도 쉬시지 못하게 하라는 뜻이다.
둘째, 육신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생활이 활기가 없는 것은 세속적인 욕망과 정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락이나 육신의 쾌락을 내려놓고, ‘기도의 영’으로 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한다.
셋째, 중보기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도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 안에 불어넣으셔서, 주님처럼 헌신하는 마음으로 다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 앤드류 머레이는 기도 훈련 중에서, 중보기도를 상급 과정이라고 표현하며 강조한다. 하나님은 개인이 인간적인 성공을 구하는 기도보다, 성도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의심하지 말라! 당신의 기도가 다른 사람들의 삶과 교회의 운명을 영원히 바꿀 것이다.
기도는 거룩한 실체다. 기도가 없으면 교회는 아름다움을 잃는다. 기도하지 않으면 연약한 모습을 벗고 일어나 세상을 정복할 수 없다. 하나님의 파수꾼으로서 밤낮으로 부르짖고, 육신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이웃과 열방을 위해 기도할 때 당신의 기도는 하늘과 땅에서 영향력을 떨칠 것이다.
- 나가는 말
바르게 하는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결코 바른 기도가 될 수 없다. 바른 기도를 하고 있다면 성령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일어 날 것이고, 작은 불꽃이 큰 불길을 만들어 가듯 성령의 불길은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했다면 그 기도는 바로 응답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온전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보다 내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하게 구하지만,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 이것은 제가 그냥 할께요. 도와주시지 않아도 되겠네요.’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의 크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께 묻고 행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다윗이 위대했던 것은 골리앗 앞에 나갈 때나 하찮은 구스사람에게 나갈 대나 한결같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이다.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목숨 걸고 매달리는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께 예수 이름으로 날마다 기도하여 응답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2008. 7. 13.
-양미동(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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